Friday, March 16, 2012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랑 [2006-8-20]



본문 : 누가복음 23:33~46
(33)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35)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찌어다 하고 (36)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44)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하나님의 사랑(Agape)에 대한 정의를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오래 참음/온유함/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음/자랑하지 않음/교만하지 않음/무례히 행치 않음/자기 유익을 구치 않음/성내지 않음/악한 것을 생각지 않음/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내리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7절에서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이것들은 사랑의 결과로 생기는 모습들입니다.
여기에서 '참음'과 '믿음(신뢰)'과 '바람'(소망) 그리고 '견딤(인내)'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성품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것'이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NIV에서는 'always'로 KJV과 NASB에서는 'all thing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Agape)을 하면, 모든 것을 항상 참고 믿으며 바라고 견디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 인간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라면 참음, 믿음, 바람, 견딤,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부부 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친구 사이에, 그리고 심지어 애완동물에 대해서 까지도 이러한 것들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얼마나 참을 수 있습니까? 인간은 결국 '내가 참을 수 있는 만큼만 참을 수 있습니다.'
아마, 가장 참기 어려운 것들 중 하나가 예배 시간에 몰려오는 졸음일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할아버지 한 분이 예배 시간에 항상 졸았습니다. 목사님이 참다 못하여 자기 아들에게 "네가 저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다가 조실 때마다 옆구리를 찔러서 깨워드려라 그러면 나중에 천원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할아버지는 아예 예배 시간 내내 주무셨습니다. 목사님이 화가 나서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왜 그 할아버지를 깨우지 않았느냐?" 아들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깨우지 않으면 이천원을 주신다고 해서요..."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신뢰하지요? 그런데 얼마나 신뢰합니까? 인간은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정도까지만 믿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어떤 잉꼬부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퇴근하는데, 여직원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방향이 비슷하였으므로 차에 태워서 그 직원의 집 앞에 내려준 후에 집으로 갔습니다. 아,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모습을 처제가 목격하고 언니에게 전화로 알려주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 아내가 화를 냅니다. 설명해 주었지만 믿지 않고 계속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밤새 싸운 후에 남편이 출근하는데, 아내가 '당장 꺼져버려!'라고 소리쳤습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화를 내면서 운전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내서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누구든지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경지까지 소망을 포기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자기가 바랄 수 있는 정도까지만 소망을 품습니다. 대우 인터내셔널의 양수영 상무는 1998년 미얀마 정부로부터 유전 개발권을 얻어낸 후에 책임자로 6년 동안 열심히 유전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습니다. 공동 투자 하였던 다른 회사들도 다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양 상무는 본사를 설득하여 마지막으로 세 곳을 선정하고 3km를 파내려 갔지만 역시 아무 소득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포기하자고 할 때, 양 상무는 죽기를 각오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계속 파 내려갔습니다. 300m를 더 파내려갔을 때, 상당히 큰 가스 유전을 발견하였습니다. 지난 1월에는 엄청나게 큰 가스전을 또 발굴하였고, 매년 3,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회사에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300m 앞에서 포기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에게는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인내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자기가 인내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인내합니다. 요즈음 한국 인터넷 게임이 국제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북미와 유럽서도 '안녕' '빨리빨리'라는 말이 그대로 채팅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곧 영어 사전에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2. 불가능한 사랑
사랑의 결과가 '모든 것을 그리고 항상' 참고 신뢰하고 소망하고 견디는 것이라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도 불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3.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그것이 가능함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비웃음과(35) 희롱과(36) 비방(39)을 받으셨지만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34)
주님은 끝까지 믿으셨습니다. 아버지 손에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셨습니다.(46) 그리고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까지도 끝까지 믿어주셨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소망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43) 강도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고난 앞에서 도망치고 흩어진 제자들이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사명을 감당으로써 하늘 나라를 선포하게 되리라는 소망을 십자가 위에서도 끝까지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받으신 주님의 고통은 육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으신 '사람의 아들'로서 사람의 한계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그리고 언제든지(항상), 참고 신뢰하고 바라고 견디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인간에게도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품으면 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참을 수 있는 것을 참고, 믿을 수 있는 것을 믿고, 소망할 수 있는 만큼만 바라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만 견디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경지를 초월해야 합니다. 초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한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고,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아무 소망도 없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한 번 더 참아주고, 한 번 더 믿어주고, 한 번 더 소망을 갖고, 한 번 더 견디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가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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