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9, 2012

부흥-III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2/4/2001)

본문 : 누가복음 3:7-14

(7)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0)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14)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I. 서론
우리는 ‘부흥’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부흥시키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보여주는 계시의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으로부터 부흥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것처럼, 성도 여러분들도 부흥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와이에 살았던 Will Smith라는 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1971년 70세 때 심장마비로 쓰러졌었는데, 생명은 겨우 건졌지만 남의 부축을 받아야만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그가 방에 누워 있으면 집 뒤에 있는 아름다운 하와이 카이 산이 보였습니다. 그 산은 225피트의 낮은 산으로, 약간 가파른 언덕과 같았지만, Will Smith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았습니다. 그저 눈으로 보면서 아쉬운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건강할 때 주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였던 것을 한탄만 하고 있던 어느 날, 하와이 카이 산 봉우리에 십자가를 세우면 그 옆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이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주님을 위하여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큰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옮기기 위해서는 먼저 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가파른 언덕을 깎아 계단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한 결과 1974년 8월 1일 산봉우리에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주변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들이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였던 그가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한 모습이 되었고, 20년이 넘게 더 살았던 것입니다.
건강을 잃고 쓰러져서 고목나무처럼 되었던 노인이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놀라운 열매가 맺히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만일 그가 한탄만 하면서 자리에 누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받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에게 일어났던 부흥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아브라함의 자손들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 많은 유대인들이 그에게로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입은 민족이라는 투철한 선민의식으로 무장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이방족속들은 무조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두터운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만을 고집하면서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웃과 이방 족속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자기 공로와 의를 세우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이 분명하였지만, 그들의 마음과 행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에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몸으로는 교회 안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생각과 계획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는 거룩하게 행동을 하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그런 모습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라 옛 피조물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옛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회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부흥은 바로 옛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회개의 결과인 것입니다. 부흥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보니, 세례 요한이 그러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2.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고목나무처럼 옛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으로 볼 때 옛 것은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옛 것이 지나가야만 새 것이 오기 때문입니다. 옛 것으로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인 것처럼, 새롭게 변화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해 있습니다. 뿌리까지 잘리는 완전한 심판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 의하면, 입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회개하겠다고 세례를 받으러 나오면서, 그 고백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행위가 유대인들에게서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심판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강한 책망 앞에서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3.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그 진노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본문에 보면, 무리들과 세리들 그리고 군병들이 질문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서, 이 세 집단은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옛 사람에 머물러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와 새롭게 됨으로써 부흥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대답을 통하여 부흥의 비결을 네 가지로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처음 두 가지는 여러분 자신이 심령 속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이고, 그 다음 두 가지는 환경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입니다.
첫째는 1) “현재를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만족의 반대는 불만족입니다. 누구든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하면 그 속에 불만족이 있다는 말입니다. 불만족은 불평의 근원입니다. 불평은 원망의 근원입니다.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면 결국 불평을 늘어놓게 되고, 심해지면 결국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빨리 메시야가 와서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고, 이방민족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기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들의 불만을 해결해 주시지 않았고,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래의 참된 소망은 현재를 만족하게 여길 때에만 가능합니다. 현재를 불만족하면서 미래를 꿈꾸게 되면, 자기 유익을 위한 야망이 되고 맙니다. 자기 권세를 이용해서 남들의 것을 빼앗는 횡포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 만족과 감사를 토대로 하면서 하나님께 새로운 것들을 구하고 계십니까? 현재의 만족은 부흥의 첫 걸음입니다.
둘째 비결은, 2) “잉여분을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욕심을 갖고 태어납니다. 무엇이든지 먼저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합니다. 배가 부르면 내일의 양식을 위해, 내년의 안전함을 위해, 10년 뒤의 풍요로움을 위해 쌓아두려고 합니다. 쌓아두면 옛것이 되고, 썩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습니다. 썩은 것들 위에 앉아 있는 그 사람 역시 썩은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풍요로운 세상입니까? 특별히 이 미국, 부지런하게 사는 우리 한민족,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분명히 그 풍요로움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면밀하게 살펴보면 일용할 양식 이외에 남는 것들 즉 잉여분이 우리들 모두에게 있습니다. 양이 적고 많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잉여분을 계산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37절부터 40절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이외에 잉여분이 전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가 어떻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잉여분을 이미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잉여분을 가지고 이 두 계명을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실천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나에게 있는 잉여분을 계산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셋째 비결은 3) “그들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대개 내 지식과 경험만을 고집하기가 쉽습니다.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나는 좋은 일을 하였고 옳은 일을 하였는데, 오히려 내 이웃이 피해를 입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내 고집으로 인하여 내 이웃이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입는다면, 어떻게 그 공동체 안에 부흥의 결과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들의 고통과 피해가 나에게도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넷째 비결은 그들을 살펴본 후에 그들의 4) “필요를 채워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이 무리들과 세리들 그리고 군병들에게 대답한 말 속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배가 고픈 자에게는 음식을, 옷이 없는 자에게는 옷을, 세금을 과도하게 내고 있는 자에게는 그 세금을 줄여주는 일을, 힘 있는 자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자유를 주라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주면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라나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면 내 것을 빼앗으려고 할 것입니다. 투쟁과 전쟁만이 계속되고 슬픔과 저주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면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흥시키시고 또한 여러분을 부흥시키실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계산법을 초월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부흥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시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대답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입으로만 하지 말고, 남들 앞에서 거룩한 척 꾸미지 말고, 오히려 은밀하게 실천하십시오. 또한 내일로 미루지 말고, 내년으로 미루지 말고 오늘 그리고 올해에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심령에,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자녀들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흥의 역사가 날마다 나타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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