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9, 2012

부흥-IV “와 보라” (2/11/2001)

본문 : 요한복음 4:19-30

(19)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I. 서론
우리는 ‘부흥’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부흥시키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을 보여주는 계시의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으로부터 부흥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것처럼, 성도 여러분들도 부흥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무리들이 있는데 ‘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학구파’라고 부르고,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이면 ‘놀자파’라고 부릅니다.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작가가 추구하는 분위기에 따라 ‘고전파’ ‘낭만파’ ‘인상파’ 등등의 이름을 붙여서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II. 본론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그 특징의 공통점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하면, 사람들 가운데에는 1. ‘가 보자 파’와 ‘와 보라 파’가 있습니다.
‘가 보자 파’에 속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소속된 환경 또는 스스로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전혀 의미를 두지 못하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속해 있는 환경이 더 좋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로 가 보자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 또는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더 좋은 것을 자기도 누려보고 소유해 보고 싶어서 찾아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가 보자 파’는 들려오는 풍문에 민감합니다. 더 좋은 것을 찾아서 여기 저기 좇아 다니다가 지치고 쓰러지게 되어, 결국에는 자기에게 있는 약간의 생명력마저도 잃어버리고 아무 능력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가 보자 파’에게는 부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와 보라 파’는 자신이 처한 상황 또는 환경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분명하게 발견한 사람입니다. 남들이 처한 상황보다 자신의 환경이 훨씬 좋다고 느끼고, 남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월등하게 가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와 보라’고 외치게 됩니다.
‘와 보라 파’는 자신의 환경 또는 심령 속에 힘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에 부딪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약동하는 생명력입니다. ‘와 보라 파’에게는 반드시 부흥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러시아 당국이 동구권 여러 나라에 광고 방송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포들이여 모국으로 속히 돌아 오라”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광고를 보고 러시아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들이 고향 땅이 싫어서, 자기 고국을 미워해서 그러겠습니까? 그것보다는, 러시아로 돌아가면 더 좋아지리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러시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서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하게 좋아진다면, 아마도 자신 있게 “와 보라”고 외칠 것이고, 많은 러시아 동포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2. 여인의 형편
오늘 본문에 보면, 수가라 하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인은 과연 ‘가 보자 파’인지 ‘와 보라 파’인지,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인은 물을 담아가려고 물동이를 들고 우물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낮 시간에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기 때문에 대개 아침 일찍 물을 길어갑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오 무렵에는 우물가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바로 그 정오 무렵에 물을 길러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나눈 대화에서 보면, 이 여인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결혼을 했다는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아마도 세상에서 한 번 만족함을 누려보려고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 남자에게서 만족하지 못할 때, 저 남자에게 가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그리 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 여인은 분명히 ‘가 보자 파’였습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남들에게서 얻어 보려고 노력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계속적인 불만족이었습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어 보았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서워서,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정오 무렵에 우물가로 나오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좌절과 포기 속에는 생명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여인의 심령 속에는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죽지 못해서 사는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하던 여인이 어느 날 갑자기 동네로 뛰어 들어가면서 “와 보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은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고, 돈이나 명예가 생기는 일도 아닙니다. 죽어있던 여인의 심령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몰래 물동이를 가지고 우물에 나온 여인처럼 심각한 좌절감 속에서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면서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만일 여러분들이 그러한 처지에 있다면, 지금이 바로 부흥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먼저 살아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죽어 있는 상태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한 여인이 부흥됨으로 인하여 온 마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부흥해야 여러분 가정과 기업과 우리 교회가 놀랍게 부흥될 줄로 믿습니다.

여인의 심령 속에서 3. 생명이 살아나는 부흥의 비결은 첫 번째로 하나님을 1) 직접 만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를 보면, 이 여인은 예배에 대하여 그리고 메시야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웃 마을로부터 들려오는 예수님에 대한 많은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간접적인 지식들은 그 여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에 와 보라”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경험을 해야,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경험하고, 그 기쁨과 감격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어서 “와 보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피해 다니던 여인이 마을로 들어가서 “와 보라.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직접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여러분에게 있던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하고, 부흥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 속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와서 나를 보라”고 외치는 여러분 될 것입니다.
생명력을 잃고 죽어있던 여인의 심령이 다시 살아나게 된 두 번째 비결은 여인의 마음속에 있던 여러 가지 2) 의문이 해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질문이 없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남아 있으면 의심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쌓이면 믿음이 사라지고 인생이 피곤해지며,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의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의문들을 갖고 있던 여인이 예수를 만났습니다. 자기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이 보통 사람이 아닌 선지자라는 생각이 들자 즉시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해답을 얻습니다. 해결되지 않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면 심령 속에 생명력이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어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성경과 날마다 씨름해서라도 그 해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질문에 대답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질문과 의심이 하나님 앞에서 해결될 때,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력이 되살아나는 부흥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인에게 생명력이 다시 살아난 세 번째 비결은 3) 생수의 능력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의하면 생수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스가랴서 14장 8절에서는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온다고 말씀하였고,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는 그 생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강같이 흘러 넘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죽어있던 그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될 때, 다시 살아나게 하는 생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생수의 능력이 임하자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마음속으로만이 아니라 입을 열어서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과거와 현재의 환경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를 않았고 오히려 그것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여인에게 임한 그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지치거나 낙담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솟아나는 생수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III. 결론
여러분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지난 1월에 인도 뭄바이에서 있었던 강연회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21살 때 신체가 마비되는 병에 걸렸습니다. 나는 그 병에 걸리기 전에는 매우 게을렀고 인생을 따분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그 생각이 오히려 나로 하여금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자극하였습니다.” 삶을 변화시키고 능력을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신의 조건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심령의 상태입니다.
“와 보라”고 외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심령 속에 생명력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뜻합니다. “와 보라”고 외치지 못하고 있다면, 심령이 살아있지 못함을 뜻합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하나님과 씨름해서라도 해결을 보십시오. 생수의 능력을 심령 속에 받으십시오. 그리고 담대히 외치십시오. “나를 보라. 그러면 나에게 역사 하신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내 가정을 와서 보라. 그리고 내 가정에 역사 하신 하나님을 만나 보라.” “우리 교회에 와 보십시오. 그러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생명력이 다시 회복되고 샘솟듯 넘쳐서 크게 부흥하시는 여러분의 심령, 가정, 자녀들, 기업 그리고 우리 교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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