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학개 2:1~9 9/9/2007
(1)칠월 곧 그 달 이십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 (3)너희 중에 남아 있는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4)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에 이어서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게 망하고, 성전은 이방인들에게 점령되어 훼파되었으며, 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던 유다 백성들은 낙심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였고 믿음은 위축되었으며 소망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마음들이 되었습니다.
학개는, 기원전 536년, 스룹바벨 및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왔습니다. 그 때 고레스는, 유대인을 해방하고, 그들이 궁전을 재건하기 위한 자재를 주었습니다. 그 재건 공사는 사마리아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레스 및 그 후계자의 도움으로 진행해 갔습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에게 대적하는 적들로 인하여, 유대인은 성전 재건 공사를 중지하고, 자기 자신들을 위해 훌륭한 집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학개가 메시지를 전하기까지, 그 공사는 15년간이나 중단되어 버린 채였습니다. 그가 예언자의 임무에 부르심을 입은 때는, 이미 노인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그가 예언자로서 일한 기간은 불과 4개월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전할 때, 그 효과는 세월에 의해 측량되지 않습니다. 그의 단시간의 예언자 역할은 큰 효과를 나타냈고, 백성은 3주 이내로 다시 그 공사를 시작하여 4년만에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무너진 성전을 보면서 더 낙심하여 포기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마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결코 성전을 재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말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한 번 큰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그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늘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꼽히는 차범근 감독은, 1978년-1989년 시즌 동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308경기에 출전하여, 모두 98골을 넣었지만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슈팅, 폭발적인 득점력을 겸비한 차 감독은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일찌감치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성인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1972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이라크와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라크와 전.후반 경기를 0-0으로 끝내면서 결국 승부차기로 들어간 한국은 2-4로 졌습니다. A 매치 데뷔전을 치렀던 차 감독이 그만 페널티킥을 실축,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 돼 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이후에 승부차기나 페널티킥을 찰 기회가 와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고 합니다. 아시안컵 때의 페널티킥 실축에 따른 두려움이 여전히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문 앞에서 표범처럼 날쌘 몸놀림으로 골을 사냥하던 천하의 차범근 선수였지만, 실패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 실패로 인하여 낙심하고 포기했다면 그 이후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1. 이스라엘이 당면한 현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떠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신다" "이제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비참한 현실은 하나님께서도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고 인정하실 정도였습니다(3절). 더욱이 이스라엘 본 백성들까지도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은 좌절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불평불만하고 원망만 하고 있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혹시 실패의 경험 때문에, 지금은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황 때문에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도 불평불만하고 원망하면서, 장차 누리게 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포기하시겠습니까?
2. 하나님이 이루시는 현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와 계획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나아지고 그들이 평강을 맛보는 것"입니다.(9절)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이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4절)"는 것, "언약한 말과 신이 너희 중에 머물러 있다(5절)"는 것, 그리고 "조금 있으면(6-7)"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꿈에 하나님을 만나 하늘 나라로 올라갔습니다. 하늘 나라를 구경하던 중 각 사람의 살아온 발자취를 그려 놓은 모래밭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생겨 살펴보았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모래밭에는 발자국이 두개가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라고 생각되는 곳에서는 발자국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젊은이가 주님께 따지듯이 여쭈었습니다: "주님, 왜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혼자 내버려두셨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들아,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었단다. 너와 동행하다가 네게 고난이 닥쳤을 때에는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사람이 보는 현실과 하나님이 보시는 현실은 전혀 다름을 알아야만 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낙심하고 있을 때 학개가 없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현실' 모르고 좌절 속에 성전재건을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을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있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현실이 나타나도록 신앙으로 준비해야 됩니다.
3. 백성이 할 일이 있다(4)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될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스스로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일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역할에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무관심하실 것이며 응답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눈에 지금 보이고 있는 현실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고 그 약속이 여전히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약속대로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지금 열심히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와 복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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