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8:15~20 9/2/2007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천국에 올라가는 길은 험하고 좁은 길입니다. 그러므로 혼자의 힘으로 올라가기는 힘듭니다.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도와줄 협조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에도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므로(창2:18)"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고, 남녀 한 쌍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두 사람이 하나가 되지 못하자 즉시 죄를 범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에도 둘씩 짝을 지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막6:7, 눅10:1)
어떤 두 친구가 2인용 자전거를 탔습니다. 언덕길을 오르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자 앞에 탄 친구가 말했습니다: "언덕길에서 페달을 밟기란 정말 힘들었어." 그러자 뒤에 있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도 힘들었어. 자전거가 뒤로 내려가지 않도록 계속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거든." 몸이 같이 있다고 해서 '합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합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 '합심'을 이룰 수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교훈을 받고 실천합시다.
1. '합심'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18절에 의하면, 땅에서 이룬 일이 하늘에까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19절에 의하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신다고 합니다.
20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합심하는 자들과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합심의 능력'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 함께 예수의 이름만 부르면 무조건 그 '합심'이 이루어진 것입니까? 그러면,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드리고 부르짖는 우리들에게서는 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까?
19절에서는 "너희 중 두 사람"이라 하였고, 20절에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그런데 정말로 쉬운 일입니까?
2. 본문에 의하면, 합심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조건은, 합심할 사람들은 죄로부터의 자유로워야 합니다. 죄를 숨기는 관계는 결코 '하나'가 아닙니다. 죄가 드러나는 순간 그 관계는 깨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조건은, 합심할 사람들은 판단과 수용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무관심하거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는 교만한 자는 진정한 '하나'의 관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조건은, 천국시민 공동체가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울타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관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끼리 합심하기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였다 하더라도 욕심이 생기면 즉시 배신하고 떠나는 것이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아닙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모양입니다. 사람에게 주지 못하는 마음을 동물에게라도 주어서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를 받으려는 인간 본능에 의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중한 애완동물이라도 천국사다리를 함께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이외에는 천국사다리를 함께 오르는 동반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올라가는 여정(旅程)에 있어서 합심할 대상을 찾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요 또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3. 합심의 실현
그러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합심'이 어려운 일입니까? 성도들 각자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예수님의 형제가 되므로, 그 형제들 간에는 자동으로 '하나' 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세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합심'을 이룰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의 형제가 됨으로써 '합심'을 이룰 수 있습니다.(15절) 내가 주님의 말씀에 의해 죄를 깨닫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주님은 "나를 형제로 얻으십니다." 성도가 주님 앞에서 늘 회개할 마음을 갖고 순종하면, 그 마음은 이미 주님의 마음과 '합심'이 된 것이며, 그 성도들끼리도 이미 '합심'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공동관심사와 공동사명을 가짐으로써 '합심'을 이룰 수 있습니다.(19절) "너의 사명이 곧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때, "오직 사명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자 할 때 그 성도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합심'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의 이름으로 행동함으로써 '합심'을 이룰 수 있습니다.(20절)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먼저 "예수님 이름에 영광이 되는 일인가?"를 질문하면서 조심한다면, 그러한 성도들끼리는 자연스럽게 '합심'이 되어갈 것입니다.
'합심'을 위한 실천 대상을 멀리서 찾지 마십시오. 먼저 가까운 관계부터 '합심'이 되어가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리고 목사와 성도 사이에 '합심'이 되어간다면, 그 속에서 진정한 '천국'이 성취되어갈 것입니다.
966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군사동맹을 맺고 대 이스라엘 군사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1967년 6월 5일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선제공격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공격 소식이 전해지자 시리아와 요르단이 이집트를 돕기 위해 참전하였고, 전쟁은 “이스라엘 대 중동”전으로 확산되었습니다. 6일 전쟁은 전쟁 개시 이후 단 130시간 만에 종결되었습니다.
미국의 한 하숙집에 이스라엘 유학생과 이집트유학생이 하숙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나자 같은 날 둘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이스라엘 청년은 조국에 가서 전쟁에 가담하였고, 이집트 학생은 끌려 갈까봐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갔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주민은 300만이었고 이집트는 1억이 넘는 대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300만 모두가 단합한 반면, 이집트는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지리멸렬한 상태였습니다.
이집트의 하늘에는 이스라엘 전투기가 항상 떠 있었는데, 아랍군의 곡사포가 이스라엘의 비행기 한 대를 쏴서 추락시켰습니다. 추락된 비행기에 가 보니 놀랍게도 조종사가 만삭된 임신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노인과 영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군인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이집트는 할 수 없이 항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이스라엘은 사막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늪지대와 모래땅을 적셔 비옥한 옥토로 만들고 수백 마일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사막을 전천후 영농 농장으로 만드는 등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합심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사다리를 올라가는 성도 여러분, 적어도 한 두 사람만이라도, 주님 안에서 '하나'된 동반자를 갖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더 기쁘고 즐겁게, 더 성공적으로, 더 높이 천국사다리 올라가는 천국시민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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