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면 배상 대신 50배 기부”… 좀도둑과의 전쟁 8개월 아이들이 착해졌어요
기사입력 2012-04-19 03:00:00 기사수정 2012-04-19 09:03:11
도난사고 확 줄인 학원가 편의점 주인 강승희 씨
강승희 씨는 “관심을 끌고 싶어 물건을 훔치는 아이도 적지 않았다”며 “절도 배상액을 기부로 돌리니 아이들도 용서받았다는 느낌을 갖고 꾸준히 단골손님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강 씨 앞의 인형은 단골 학생들이 가져다준 것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어느 정도 편의점 일이 익숙해진 뒤, 하루에 3∼4시간씩 제품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서 장부와 제품의 실제 수량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머리에 바르는 헤어 왁스의 경우는 유독 수량 차가 많이 났다. 헤어 왁스는 멋 부리는 남학생들의 ‘필수품목’이었다. 비로소 이전 가게 주인의 충고가 떠올랐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강 씨는 우선 왁스진열대를 계산 카운터 안쪽으로 옮겼다. 다음으로 수량 차가 많이 나는 스낵과 헬스&뷰티 코너에 대해서는 폐쇄회로(CC)TV의 위치와 각도를 바꿔서 집중 감시에 나섰다.
2011년 4월 초. 편의점의 일상적인 업무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이력이 붙었다. 진열대를 쓱 둘러봐도 무슨 상품을 더 주문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도난사건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는 아이들 중에 좀도둑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강 씨는 고민 끝에 ‘물건을 훔치면 50배를 물어내게 한다’는 경고문을 가게 안에 붙였다.
소용없었다. 종전 주인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강 씨가 ‘폭발’한 것은 경고문을 붙인 뒤 한 달쯤 뒤의 일이다. 자주 오던 중학생 A 군이 계산을 치르고 나간 뒤 카운터에 있던 5000원짜리 고급 시가 하나가 사라졌다. 잠깐 등을 돌린 사이에 집어간 것이 분명했다. 평소의 옷차림이나 씀씀이를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 같지는 않았다.
‘이대로 두면 들킬 때까지 습관적으로 훔쳐가겠구나….’ 강 씨는 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버릇을 고쳐 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CCTV를 확인해 증거를 확보한 뒤 A 군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부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학생부 교사의 반응은 너무나도 의외였다.
“그래서 왜 여기로 전화하신 건데요?”
학생부 교사는 “학교 안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여하기 싫고 관여할 이유도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교사의 무책임한 태도에 강 씨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길로 경찰 지구대에 전화를 걸었다.
감정이 격해져서 앞뒤 없이 쏟아내는 강 씨의 말을 경찰관은 가만히 들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당시 신정2지구대의 박용삼 팀장이었다. 지구대 안에서도 평소 청소년 선도에 관심이 많기로 유명한 경찰관이었다. 박 팀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법이죠. 제가 찾아볼게요.”
박 팀장이 경찰차를 몰고 학교에 찾아가자 전교생이 발칵 뒤집혔다. 박 팀장은 교사를 찾아 시가를 훔쳐간 A 군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름과 학부모 연락처를 받아왔다.
“몇백 원, 몇천 원짜리 절도는 경찰도 그냥 넘기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처음엔 과자로 시작한 아이들이 다음에는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손을 대고 심하면 차량 절도범이 되기도 합니다. 도둑질 습관은 작을 때 고쳐줘야 합니다.”
박 팀장의 말이었다.
○ ‘배상 대신 기부’ 아이디어 적중
“(아들이) 몇천 원짜리 가져간 거 가지고 왜 그러느냐”던 어머니들도 기부의 뜻을 듣고는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한 학부모는 봉투에 ‘좋은 뜻 잘 기리겠다’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세븐일레븐 제공
‘물건 값의 50배를 정말 받아도 될까? 점포 이미지만 나빠지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갑자기 뉴질랜드에 살았을 때 들었던 일이 생각났다. 가벼운 절도범은 구속하는 대신 사회봉사 명령을 내리는 것이 그곳의 관행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꽃동네 봉사활동을 하곤 했던 강 씨의 머릿속에 ‘배상금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합의금’ 명목으로 돈 봉투를 가져온 A 군의 엄마는 강 씨의 제안을 처음에는 의아해하더니 이내 “좋다”고 했다. 다만 남편에게 말할 수 없으니 강 씨 이름으로 기부해 달라고 부탁했다. A 군의 아빠는 공무원이었다. A 군 엄마의 반응을 봤을 때 습관적으로 훔치는 일이 더 있었던 듯했다.
다른 엄마들은 대개 “내 아이일 리가 없다. CCTV를 내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번은 콘돔을 훔친 중학생이 적발됐다. 호기심에 훔친 것이었다. 엄마는 믿을 수 없다며 “CCTV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이 중학생은 ‘전부 내 잘못’이라며 엄마에게 애걸복걸해 모자가 함께 CCTV에서 민망한 장면을 보는 일은 피했다.
서로 기부금을 내겠다고 하는 일도 있었다. 학생 4명이 우유 1개를 훔친 사건이었다. 물건 값의 50배인 5만 원을 엄마 4명이 각각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기분 좋게 엄마들 각각 꽃동네에 기부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두 달 동안 깜깜무소식인 엄마도 있었다. 포기하고 잊어버렸는데, 어느 날 가게 앞으로 편지가 왔다. 기부금 영수증이 들어 있는 봉투 겉면에는 ‘늦어서 죄송합니다. 좋은 뜻 잘 기리면서 아이 교육 잘 시키는 엄마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기부금 영수증에는 물건 값의 정확히 50배만큼의 금액이 적혀 있었다. 마음이 뭉클했다.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은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많았다. 집안이 어려워 물건이 꼭 필요해 가져가는 아이들은 전체 도난사건의 절반밖에 안 됐다.
시간이 갈수록 강 씨의 ‘기부금 받기’ 노하우는 발전했다. 일단 자수하거나 용서를 빌러 온 ‘초범’은 부모에게 절도 얘기를 안 한다. 그 대신 학생이 원하는 만큼 카운터에 있는 유니세프 모금함에 넣도록 했다. 와플 같은 간식을 훔치다 걸린 초등학생들은 타일러서 그냥 보냈다. 엄마들에게 기부금을 내라고 종용할 때에는 그 집의 경제사정에 따라 절반으로 깎아주기도 했다. 이렇게 받은 기부금 영수증은 편의점 벽에 붙여 놓았다.
○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어른들의 관심”
“안녕하세요.”
길에서 누가 인사를 해서 봤더니 시가를 훔쳐갔던 아이였다. 혼이 났으니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가게에도 자주 왔다. 다른 아이들도 강 씨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전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강 씨는 밝은 표정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흐뭇했다.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사회단체에 기부금을 내고 반성을 했으니 용서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강 씨는 중고교생들에게 잔소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라면 먹었으면 정리 잘해라.”
“아무 데나 쓰레기 버리지 마라.”
아이들을 좋아해서 그러면서도 ‘너무 야단치면 매출 떨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잘못할 땐 야단치고, 잘하면 칭찬해 주고 덤으로 사탕도 얹어 주니 더 좋아했다.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것 같았다. 물건을 계산하면서 학교 얘기, 친구들 얘기를 조잘대는 아이들도 늘었다. 편의점에 놔두라며 인형을 가져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중에는 이 아이들이 ‘좀도둑질과의 전쟁’을 선포한 강 씨의 가장 큰 ‘지원군’이 됐다. 도둑을 잡기 위해 CCTV 캡처 사진을 편의점 벽에 붙이면 ‘아줌마, 제가 잡아드릴게요’라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줬다. 자수하라는 친구들의 설득에 스스로 용서를 빌러 오는 아이들도 늘었다. 적극적으로 제보하는 아이도 있었다. “고등학생 ○○○ 꼭 잡아주세요. 왁스 훔쳐서 친구들한테 반값으로 팔아 용돈 번대요.”
‘좀도둑질은 창피한 행동’이라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자 지난해 12월부터는 절도 사건이 한 건도 생기지 않았다. 강 씨는 “도난사건의 절반 이상은 단골 학생들이 범인을 잡아준 것”이라며 “경찰과 다른 학생들의 관심과 도움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8개월 동안 도난과의 전쟁을 벌인 끝에 기부금 영수증 200여만 원어치가 쌓였다. 좀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 모금함에 지폐를 넣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강 씨는 요즘 점포를 잠시 비울 때 문을 잠그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좀도둑질과의 전쟁을 하면서 처음에는 화도 나고 힘들었지만,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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