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2, 2012

복이 있나니-VII “화평케 하는 자, 아브라함” (6/2/2002)

본문 : 마태복음 5:9, 창세기 13:5-12

(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I. 서론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ain)’이라고 말하는 마태복음 5장의 “복 있는 자”가 되는 비결을 말씀으로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곱 번째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받을 차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전통에 있어서 ‘아들'은 ‘아버지의 상속권을 가진, 아버지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자'를 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소유물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속권을 갖게된다는 말이며, 하나님처럼 거룩한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영광 중에 이것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그러한 존재가 되고싶습니까? 그렇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영광스러운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II. 본론
“화평”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shalom”인데, 이것은 그저 싸움이 없는 소극적인 의미의 평화로운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어떤 상태”를 뜻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단어입니다. 유대인들은 요즈음에도 서로 “샬롬”이라고 인사하는데, 이것은 “당신과 나 사이가 가장 좋은 상태에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1. 화평과 인간의 관계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화평과 인간 사이에는 세 가지 관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화평을 파괴하는 관계입니다. 영어로 하면, 이런 사람은 ‘peace destroyer'입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상태로 되어 가는 것을 싫어하고 방해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는데,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인간의 속성을 잘 표현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가는 곳에는 화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좋아지는 쪽으로 발전되지 못합니다. 분쟁과 파괴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화평을 좋아하는 관계입니다. 영어로 하면, 이런 사람은 ‘peace lover’입니다.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니까 좋은 말인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화평이 있는 곳, 다시 말해서 아주 좋은 상태에 있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자기가 있는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하루아침에 다른 곳으로 떠나버립니다. 그러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공동체에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이 미치리라는 점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평화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세 번째는 화평을 만들어가는 관계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peace maker’입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화평케 하는 자”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그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화평을 만들어갑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낫고, 현재보다 미래가 나아지도록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유익보다는 공동체의 유익, 더 나아가서는 주님 안에서의 형제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람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2. Peace Making의 조건
오늘 본문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유물이 많아지자, 두 사람의 종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점점 더 좋아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브람이 큰 결단을 내립니다. 롯에게 헤어질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화평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될 세 가지 조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통찰력입니다. 본문 7절에 의하면, 아브람과 롯이 싸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종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람과 롯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 작은 사건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함께 있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통찰력은 영적인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에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더 좋아지게 하는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만 따라가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으나 곧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여러분은 보혜사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고,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감으로써 화평을 만들어 가는 참된 복 있는 자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peace making의 두 번째 조건은 희생과 양보입니다. 만약에 아브람이 그러한 통찰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자기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과 양보를 롯에게만 요구하였다면, 어떤 결과가 이루어졌을까요? 삼촌의 명령이니까 롯은 순종하였을지 몰라도, 롯의 종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아마, 헤어진 후에 서로의 관계가 더 나빠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브람은 peace maker가 아니라 peace destroyer가 되었겠지요?
본문 9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샬롬 즉 더 좋은 상태를 만들기 위해 자기 것을 희생시키고 양보합니다. 얼마든지 기득권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희생하고 양보하였더니 아브람에게 큰 손해가 임하였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아브라함처럼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peace making의 세 번째 조건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희생하고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굳건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당하는 고난과 손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아브라함 같은 믿음이 생기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런데 이 3. Peace Making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최고의 우선순위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샬롬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살피고, 나의 뜻과 바램을 희생하고 양보하여 하나님 뜻 앞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그 다음 우선순위는. 나와 나 사이에 샬롬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 심령 속에서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통찰력과, 성령의 요구에 대한 순종, 그리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으로 믿음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 우선순위가 나와 그들 사이에 샬롬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과 이성적인 판단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상황을 잘 판단하고 내 것을 먼저 희생하고 양보하며 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굳건히 믿고 인내함으로써 그들과의 사이에 샬롬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거꾸로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샬롬을 이루지 못하면서 자기 아내 또는 남편과의 사이에, 부모 또는 자식들과의 사이에, 세상의 친구들 또는 교회의 서오들과의 사이에 샬롬을 억지로 이루려고 하니, 오히려 갈등과 투쟁이 더 벌어지는 것입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물려받는, 참된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peace destroyer가 되어 가는 곳마다 화평을 깨는 자 되지 마시고, peace lover가 되어 자기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망가뜨리는 자 되지 마시고, PEACE MAKER가 되어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더 좋아지고 더 잘되는 일이 생기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칭해 주시고, 정녕 복 있는 자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축원 드립니다. 아멘.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