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20:1-6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3)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4)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5)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 중에 그 이웃을 죽였음이라 (6)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I. 서론
“억울하다”라는
말은 “억눌려서 답답하다”라는 뜻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사실과 다른 오해를 받아 손해를 보게 될 때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들
주변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특히 아무 이유 없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박탈당할 때 그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1970년대 말에 한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어느 중학교 선생님이 학교에서 퇴근하는 길에, 자기 집
앞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반정부 운동에 가담하였음을 자백하라고 강요하는 정보부 요원에게 자신은 중학교 선생님이고 그런 일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말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 1년이 넘는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였지만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였고, 결국에는 찾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1년이 넘은 후에 그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고문을 많이 받아서 움직이지
못하였고, 정신까지도 이상하게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보부에서 체포하려던 사람은 그 선생님의 바로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II. 본론
1. 도피성의 배경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노예가
되어 종살이를 한 일도 참으로 억울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급속하게 늘어나게 되자, 위협을 느낀 바로왕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고
억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하소연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후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도피성을 정하도록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민수기 35장, 신명기 19장 등) 그리고 똑같은 명령을
여호수아에게 다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도피성을 두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억울함을 당하면 원수를 맺게 되고, 원수 갚는 일이
계속됩니다. 그렇게 되면, 생명의 열매보다는 죽음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구원함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피성을 두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도피성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 안에, 믿는 자들의 사업장 안에 도피성이 있어야 하고, 또한 믿음의 집인
교회가 그 도피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2. 도피성의 은혜와 율법
도피성은 억울하게 죄를 범하게 된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심지어는 살인을 범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일단 그 도피성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그에게 해를 입힐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도피성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을 주셨는데, 도피성으로
도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다 살려준다면, 하나님의 율법이 무너지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누구든지 쉽게 죄를 짓고 도피성으로 도망칠 것이니,
하나님 백성들의 삶 속에 죄가 더 깊어지지 않겠습니까?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는 로마서 6장 23절 말씀대로, 도피성은 생명의 근원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풍성케 하기 위하여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3. 생명의
열매를 맺는 도피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무엇보다 먼저 그 도피성이 1) 항상 있어야만 합니다. 문제가 생긴
후에 도피성을 만들려고 하면,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고기잡이를 하는 어느 마을에 등대가 하나 서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저 등대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 마을 앞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큰 배가 지나간 적이 없고, 그
등대의 혜택을 입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매일 밤마다 불을 밝히기 위하여 비싼 연료를 소모하고 있으니, 저 등대를 당장
폐쇄시킵시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찬성을 하였고, 그 날 밤부터 등대가 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름을 싣고 가던 큰 유조선이
그 마을 앞으로 들어와 좌초되었으므로 해변이 오염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유조선은 해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다를 항해하곤 하였는데, 항상 보이던 그 등대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가다가 그 마을 앞바다에 있는 암초에
부딪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가정 안에 이러한 도피성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도피성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만약에 남편이나 아내가 평소에 서로의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무슨 문제가 갑자기 생길 때 의논하여 해결하기보다, 혼자서 고민하다가 엉뚱한
유혹에 빠져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부모님들이 자녀의 실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늘 완고하게 꾸중만 한다면, 그 자녀는 실수를 범하였을 때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나가기가 쉽습니다. 문제가 생긴 뒤에
도피성을 만들려고 하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교회가 성도들 각자에게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성도들이 평소에 교회와의
관계를 항상 잘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교만하게 생각하면서 교회를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든지, 헌신과 봉사를 통하여
평상시에 교회의 가치와 의미를 마음 속에 잘 심어두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때 교회가 도피성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둘째로, 생명을
맺는 도피성은 2) 문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도피성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어도 문이 닫혀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도피성
앞에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또한 제사장은 언제든지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청년이 실수를 하여
부모님들께 손해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에게 꾸중들을 것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다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집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구걸을 하며 배고프게 살아가던 청년은 갑자기 자기 집과 부모님들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돌아가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거야.” 고민하던 청년은 어느 날 깊은 밤에 자기 집 앞으로 갔습니다. 문 앞으로 갔다가 돌아서기를 여러 번 하던 그 청년은
자기 집 문이 약간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청년은 살며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 갑자기 안방 문이 열리면서 어머니가
소리쳤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돌아왔구나. 우리는 늘 문을 열어두고 너를 기다렸단다. 두려워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와라.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청년의 방황은 그 날로 끝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의 머리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성도는 그 교회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교회는 언제든지 문이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면 문 앞으로 오셔서 소리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도피성의 문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릴 것입니다.
셋째로, 생명의 열매를 맺는 도피성은 3) 실수와 고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실수로 죄 지은 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로 죄 지은 후에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죄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고의적으로 범하는 자는 반드시 그 죗값을 갚아야
합니다.
한국에 IMF 사태가 있은 후로, 집과 가족을 잃고 길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그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 놓고, 매일 아침마다 버스를 보내어 일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일하기를 싫어하고, 공짜로 음식을
제공하는 곳만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더 망하게 하는
일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자녀들의 실수와 잘못을 덮어주는 것은 잘못입니다. 실수한 것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하지만, 고의적으로 했거나 또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엄하게
꾸중하고 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교회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주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도피성이 아니라 악인들의 도피성에
불과합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건지시기 위하여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도 여전히 실수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도피성이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도피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정과 직장 안에 항상 도피성이 있게 하고, 우리 교회가 항상 도피성 역할을 할 수 있게 유지하고, 문을 열어두며,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곳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를 통하여 풍성한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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