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1, 2012

천국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2/24/2002)

본문 : 마가복음 1:14-15, 골로새서 1:13-20

(14)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3)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I. 서론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지나간 4,000년의 역사 중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불과 몇 십 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게 되어 있습니다. 전쟁에서 지면, 모든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나이든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젊은 사람들은 적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이 벌어지면, 모든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가 싸워야 하였고, 노인들과 여인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마을에 남아, 싸움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승리의 소식을 기다리며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적들의 소유를 빼앗아 부자가 되고 그들을 노예로 부리느냐가 결정되는 순간입니다. 드디어 저 멀리서 전쟁에 나갔던 한 사람이 뛰어옵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소리칩니다. “유앙겔리온!” 이 말은 헬라어로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복음’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며 외치신 단어가 바로 그 “유앙겔리온”입니다.

II. 본론
그러면, 예수님의 그 외침이 1. 왜 기쁜 소식이었습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독일군에게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침마다 한 줄로 서서 독일군 검사관 앞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왼쪽으로, 어떤 사람은 오른쪽으로 분류됩니다. 왼쪽으로 간 사람은 곧바로 가스실로 들어가 처형됩니다. 오른쪽으로 간 사람은 전쟁 물자를 만드는 일에 강제로 동원됩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면, 다음날 아침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수용소 안에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Viktor Frankl 박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전에 알고 지내던 독일인 의사가 검사관으로 와 있다가 우연히 Viktor 박사를 알아보고 충고를 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수염을 깎으시오. 면도기가 없으면 유리조각으로라도 깎으시오. 그리고 검사관 앞에 설 때 아주 건강하고 행복한 표정을 보이시오.” 성도 여러분, 그들이 그 수용소 안에 갇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무엇이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Viktor Frankl에게는 그 독일인 의사 친구의 말이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말대로 실천하여 3년 동안을 무사히 지낸 후, 독일의 패망과 함께 해방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에서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는데, 그것이 왜 기쁜 소식이었습니까?
모든 인간은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죽음의 사슬로부터 도망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해방시키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참모습입니다. 그런데 골로새서에 있는 본문말씀 13절과 20절을 보니, 인간이 흑암의 권세로부터 건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 즉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옮겨지게 되며, 그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니, 그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2. 왜 예수인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해방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고 이갸기합니다. 부처를 믿든지, 마호멧을 믿든지, 공자를 믿든지, 모두가 다 진리이기 때문에 구원이 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님으로 인해서만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주장이 맞습니까?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 골로새서에 증거 하는 것처럼, 예수만이 구원주가 되실 수 있는 것은 첫째로, 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골1:15)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물질적인 존재가 직접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여 나타내시지 않는 한, 인간이 스스로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처럼, 영원한 진리이신 로고스가 육신을 입고 우리 앞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인간의 구원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구원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골1:13) 하나님의 아들은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우주의 창조에 직접 관여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우주의 비밀을 다 아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형편을 다 아실 수 있습니다.
셋째로, 그는 부활의 첫 열매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골1:18) 누구든지 직접 가보지 않은 길로 다른 사람을 안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적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새로운 존재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을 그 길로 안내하여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은 구원받은 무리들의 모임인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골1:18) 머리의 지시대로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직접 교회의 머리가 되어 믿는 자들을 안내하시기 때문에 구원주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던 어떤 존재도 이 네 가지의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주가 되는 것입니다.
눈이 몹시 많이 내린 어느 추운 겨울 밤, 예수님을 믿지 못하던 어떤 사람이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가 창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새 한 마리가 쉴 곳을 찾지 못하다가 밝은 빛을 보고 창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는 사람을 보고 이리 저리 도망하였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새는 창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새야, 왜 나를 무서워하니? 나는 너를 도와주고 싶다. 이 방안으로 들어와 저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거라.” 아무리 소리쳐도 새는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순간 큰 깨달음이 그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아! 이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구나!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구원의 때가 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눈앞에 가까이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새에게 아무리 창문 안으로 들어오라 외쳐도, 그 소리를 듣고 따르지 않으면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손을 내밀지 않으면 그 기쁜 소식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3. 기쁜 소식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두 가지 조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사야 53장 6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원래 지어주신 목적대로 인생을 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죄(hamartolos)’입니다. 무슨 행위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듣고 따르고자 하는 자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metanoia)’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에서 증거 하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방향으로부터 자꾸 벗어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으로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진리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둘째 조건은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 안으로 들어가 완전히 그것과 비슷해지는 본질적인 변화를 뜻하고, 계속해서 그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 기쁜 소식 안으로 들어가 그 기쁜 소식의 주인공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가며,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와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입니다. 공통적인 것은 둘 다 인간의 의지적 결단을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III. 결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 하나님을 향한 방향에서 벗어난 분이 있습니까? 지금 결단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복음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자녀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유혹하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계속 숨어있지 마시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노예처럼 사시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완전한 자유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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