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5:13~20 3/13/2005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리스도인은 빛과 소금이다’라는 말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 어떻게 해달라는 말입니까? 얼굴에서 빛이 나고, 소금처럼 짠 맛을 내게 해달라는 말입니까?
빛이란 ‘어두움을 몰아내고 생명체들로 하여금 활동하게 하며 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4절에서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이 문제의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세상에 대한 착한 행실’이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변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 즉 성경지식이나 영적 체험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성령의 은사가 그 빛이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얼마나 목에 힘을 주면서 자랑하는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을 착취하거나 그들에게 죄악을 행한 결과로 얻은 것으로 자기 영광을 위해 선행을 보여주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로는 어두운 세상을 결코 밝혀줄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하루는 제자들과 길을 떠나면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세상이 어두워서 빛이 없으면 걸어갈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면에 소금은 ‘썩지 않게 하고 생명을 유지하게 만드는 물질’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사다리를 올라가는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13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성경에서 바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찾아내기가 쉽지 않지만, 17절부터 20절 말씀에 의하면 ‘율법과 선지자’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1절부터 48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바탕에 깔린 하나님의 공의야말로 썩은 세상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소금이 될 것임을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 옛 습관대로 살면서도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는 율법과 계명 또는 전통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썩게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율법사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난하셨던 것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에 귀족들이 많이 있었고, 헬라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있었지만 세상의 소금 역할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세상의 빛’과 ‘세상의 소금’에는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1)없는 곳에 필요하다. (2)자신을 희생한다. (3)널리 퍼져나간다.
1. 첫 번째 공통점은 ‘없는 곳에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빛은 어두운 곳에 필요합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할 때, 욕심으로 전쟁할 때, 또는 미래적 절망감이 만연할 때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곳에 ‘세상의 빛’이 필요합니다. 빛들이 자기들끼리만 모여 있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누구의 빛이 더 밝으냐고 하면서 서로 싸우기만 할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은 절대적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공의를 행치 않는 곳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서로 비교하여 가치를 정하는 상대주의를 가지고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소금이 있는 곳에 소금을 자꾸 더 넣으면 너무 짜서 음식을 먹을 수 없듯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행하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만 율법을 강조하게 되면 바리새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천국 사다리를 올라가는 ‘너희’에게 빛이 없고 소금이 없는 세상으로 찾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이름으로 착한행실을 보여주고 사랑의 공의를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 두 번째 공통점은 ‘자신을 희생한다.’는 점입니다.
빛은 자신을 불태워 없어져야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소금은 자신이 녹아 없어져야만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자기희생 없이 착한 행실을 보여주려고 한다면 위선이 될 것이며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자기희생 없이 공의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랑 없는 정죄만 일삼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천국사다리를 올라가는 ‘너희’에게 먼저 희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희생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보여주고 사랑의 공의를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세 번째 공통점은 ‘널리 퍼져나간다.’는 점입니다.
빛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퍼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착한행실은 아무리 모르게 해도 알려지게 되어 있고, 모르게 할수록 더 강하게 퍼져나갑니다.
소금은 일단 녹아들어간 후에는 아무리 되돌리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사랑이 바탕을 이루는 공의를 행할 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사람들에게 적용된 후에는 반드시 그 위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선행과 사랑이 가난한 빈민촌에서 고아들과 병자들에게 베풀어질 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등불이 지금도 내 삶 속에서 불타고 있습니다.’라고 그녀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천국사다리를 올라가는 ‘너희’에게 열심히 뿌리고 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속을 믿고 인내함으로 열매를 기다리면 반드시 그 결과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천국사다리를 올라가는 ‘너희’마저 세상의 빛이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세상의 소금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세상의 빛이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 앞에 ‘세상의 소금이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의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입니다.
천국사다리를 올라가는 성도의 생활은 세상에게 빛이 되어주고 소금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혼자 올라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길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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