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룻기 1:11~18
(11)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12)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오늘은 어머니날입니다. 미국의 어머니날은 5월 두 번째 일요일인데, 1907년에 'Anna Jarvis'라는 필라델피아에 온 여자에 의해 생겼다고 합니다. 생전의 불효를 뉘우치고,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카네이션을 바쳤는데,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게 되었고, 1914년에 Wilson대통령이 의회결정으로 5월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공식화하여 사랑과 감사의 표현으로써 축제가 행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럽과 멕시코에서도 큰 행사가 2일 동안 계속되고, 독일에서는 어머니들에게 모든 소원을 표현하도록 특혜를 준다고 합니다. 아침식사를 침대까지 날라다 주며, 어머니를 위해 아이들은 시 한편을 짓고 그림을 그리거나 과자를 구워드립니다. 한국에서는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하였고 1973년부터는 어버이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날은 어떻습니까? 어머니날은 다 알지만 아버지날을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동화를 아시지요? 제목만 들어도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그러나 “아빠 찾아 삼만리?” 좀 어색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남자에게도 이 어머니날은 낳아주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아름다운 날입니다.
‘어머니날’이라는 노천명 시인의 시를 소개합니다.
온 땅 위의 어머니들이 꽃다발을 받는 날
생전의 불효를 뉘우쳐
어머니 무덤에 눈물로 드린
안나 자아비드의 한 송이 카아네이션이
오늘 천 송이 만 송이 몇 억 송이로 피었어라
어머니를 가진 이 빨간 카아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 없는 이는 하이얀 카아네이션을 달아
어머니날을 찬양하자
앞산의 진달래도 뒷산의 녹음도
눈 주어볼 겨를 없이
한국의 어머니는 흑인노예모양 일을 하고
아무 찬양도 즐거움도 받은 적이 없어라
이 땅의 어머니는 불쌍한 어머니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싹을 내거니
청춘도 행복도 자녀 위해 용감히 희생하는
이 땅의 어머니는 장하신 어머니
미친 비바람 속에서도 어머니는 굳세었다
5월의 비취빛 하늘 아래
오늘 우리들의 꽃다발을 받으시라
대지와 함께 오래사시어
이 강산에 우리가 피우는 꽃을 보시라
1. 어머니의 사랑
유다 지파 사람으로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가난을 피하여 두 아들들과 함께 이방 땅 모압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곳에서 이방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이 죽는 큰 불행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한 불행 속에서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며느리인 룻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아마 그들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로서였다면,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친어머니와 친딸처럼 사랑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행한 시어머니와 불행한 며느리가 사랑으로 그 불행을 극복하고, 예수님이 그 혈통 속에 태어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그 사랑은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 속담에 ‘시집살이 해본 사람이 시집살이 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면 룻이 그렇게 시어머니를 사랑할 수 이었을까요? 나오미의 그 사랑은 결국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받았을 것이고, 그 어머니의 사랑은 또 그 어머니로부터 왔을 것입니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인간 창조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위대함은 생명을 낳기 위한 고통 속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녀가 탄생할 때 그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어머니의 마음 속에 가득 차게 됩니다. 이러한 기쁨이 바로 인간에게 생명 주시는 하나님의 기쁨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기뻐서 외치십니다. <시편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그 사랑이 인간의 생명 탄생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바로 그러한 사랑이요, 우리는 이미 그 사랑을 받았습니다.
3.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 사랑에 보답할 일만 남았습니다.
나오미와 룻 사이의 사랑은 어머니와 자녀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고, 하나님과 자녀 간의 사랑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사랑은 첫째로, 기쁨으로 베푸는 사랑입니다. 마지못해서 또는 억지로 베푸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사랑입니다. 며느리 룻에게 베푼 나오미의 사랑이 그러하였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어머니가 베푼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러한 사랑입니다.
둘째로, 그것은 감사함으로 받는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의 사랑을 받을 때 아마도 룻은 마음 속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룻은 어려운 길임을 알면서도 나오미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로부터 받는 사랑,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 역시,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도대체 우리가 그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셋째로, 그것은 사랑으로 보답하는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받기만 좋아하고 받은 것으로 끝나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답한 사랑,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어머니께 보답해야 할 사랑의 모습일 것이요, 구원받은 자녀로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사랑의 모습일 것입니다.
누구든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낳아주시고 보호하시고 키워주신 육신의 어머니에게 감사하면서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창조하시고 보호하시며 천국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애써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어머니 주일에 어머니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보답하는 자녀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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