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찌어다 (2)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5)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6)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7)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8)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9)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I. 서론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자어를 보면 사람을 나타내는 “인(人)”이라는 글자가 두 개의 막대기가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옛 말에 “친구 따라 강남(South of the River)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일들이 생기지만, 나쁜 친구들을 사귀면 아무리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친구를 따라 운명의 강을 건너온 비참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여전히 하나의 원칙이 통용되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원칙이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원칙은 “권세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을 친구로 사귀라. 그러면 그로부터 큰 도움을 얻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1970년대에 젊은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7 공자(Prince)의 친구가 되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7 공자들” 중에 두목은 바로 그 당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Park, Ji Man)이었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으니, 그의 친구만 될 수 있다면 정말로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 한 아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중학교,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제도까지 다 바뀔 정도였으니 알만하지 않습니까?
많은 젊은이들이 그 “7 공자들”의 친구가 되고싶어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겨우 20년도 지나지 않아서 그 박지만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었고, 그는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감옥을 자기 집 드나들 듯이 하는 폐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에게 충성하며 따라다니던 친구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옛날에 어느 산골에 아주 가난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주워 팔아서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꾼 하나가 벼랑에서 떨어져 거의 죽게 된 것을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그 나무꾼은 그를 집으로 데려다가 정성스럽게 치료를 해주었고, 자기들의 양식을 그에게 주어 힘이 소생되게 하였습니다.
한 달쯤 지나고, 그 사냥꾼이 걸어다닐 정도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냥꾼은 나무꾼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당신은 나를 살려주신 생명의 은인입니다. 나는 당신과 죽을 때까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친구로서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고 싶으니 이야기하십시오.”
나무꾼은 그 사냥꾼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였지만,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산중에서는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당신과 내가 친구가 되었으니, 일 년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와서 나와 함께 며칠간 머물며 놀다 가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내 소원입니다.
사냥꾼은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냥꾼은 바로 그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왕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 다음 해부터 왕이 그 나무꾼의 집으로 가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왕이 편히 갈 수 있도록 넓은 길이 만들어졌고, 왕이 잠을 자는 곳이니 대궐같이 큰 집이 지어졌고, 왕이 식사를 해야 하니 날마다 풍성한 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왕을 친구로 삼은 덕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동무로 삼고싶습니까?
II. 본론
우리는 지난 주에 “오직 여호와만을 1. 의뢰하라/기뻐하라/맡기라 그러면 땅을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가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조건임을 알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그렇게 실천해 보셨습니까? 쉽게 실천이 되던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싫든 좋든 이 세 가지를 실천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1절 말씀에서 보듯이, 이 세 가지를 실천해야 악인이 형통한 것을 불평하지 않게 되고, 투기하지 않게 되고, 속히 베임을 당하기보다 영원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 보듯이, 여호와 앞에 잠잠히 기다릴 수 있고, 자기 길이 형통하며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않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보듯이,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다 인정하듯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포기할까요? 그럴 수는 없지요! 한 가지 비교적 쉬운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그러한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 만약에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를 여러분의 2. 동무 삼을 수 있다면, 여러분 역시 언젠가는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권세를 누리고, 지금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무조건 따라다니는 어리석은 사람 되지 마세요! 잘못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갈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세상적으로 볼 때 힘이 없고, 부족하고,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만약에 그가 진정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며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기고 사는 믿음의 사람인 것이 확인되거든, 그 사람을 붙잡으십시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할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8장 이하에 보면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 사이에 이루어진 아름다운 우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다윗은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기는 몸이었습니다. 그를 돕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쌍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아들로서 모든 권세를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동무로 삼기 위하여 자기 아버지를 배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나단은 여호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사울과 요나단은 망하였지만, 요나단이 다윗의 동무였기 때문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생명을 건지게 되었고 심지어는 다윗 왕과 함께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나누는 영광을 차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호와를 기대하 자”라면, 여러분의 부모님이 세상적으로 실패하고 가난하다 하더라도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분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는 여러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정녕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라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로 여기고 극진히 대접하기 바랍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친구나 교우들 중에,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별 볼일 없고 낙오자처럼 보일지라도 정녕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가 있거든 그를 동무 삼기 위하여 모든 것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사람이 연약한 여러분을 받쳐줄 기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마태복음 7장 7절로 11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여기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를 3. 찾으라/구하라/두드리라”.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를 우리 주변에서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열어서 나와 동무가 될 수 있도록 심령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위하여 그와 함께 하늘 문을 두들겨야 합니다.
헬라 제국을 이룩한 악렉산더 대왕이 하루는 유명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 등불을 켜서 들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선생님 이 대낮에 왜 등불은 켜서 들고 다닙니까?” 그 때 디오게네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등불을 들고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는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습니까?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이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 나갈 수 있는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를 동무로 삼는 일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힘이 적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동무로 삼으십시오. 그는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의 삶을 완전하게 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를 열심히 찾으십시오. 그와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땅을 차지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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