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2, 2012

“예수가 당신의 주님입니까?” (12/15/2002)

본문 : 요한복음 13:31~38

(31)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32)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36)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37)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I. 서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들 중에 “욕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욕심”이라는 단어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하지만, 면밀히 따지자면, “욕심”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그 “욕심”이 정욕적이거나 또는 너무 도가 지나친 경우에는 문제가 되겠지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거룩한 욕심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아무리 욕심을 낸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그러한 욕심이 있기에 아까운 시간을 드려가면서 이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선택하셨던 12사도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특별히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복음서들이 증거 하는 바에 의하면, 그 중에서도 베드로가 가장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라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는 내가 너희를 떠나갈 때가 되었다”는 말씀을 암시적으로 전하자, 베드로가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입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베드로의 이 질문은, 37절에서 알 수 있듯이,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설령 죽는 자리에 가더라도 내가 따라가겠습니다.”라는 결단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주님’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kurios'인데, 그 당시에 노예들이 자기를 소유하고 있는 주인을 부를 때 쓰던 말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당신은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당신의 노예 또는 종입니다.”라는 엄청난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그 당시에 노예들이 사용하던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예수님을 쉽게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당시에 사용되던 분명한 의미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위대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38절의 의하면,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가 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위대하였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았다면, 지금 현재의 우리들의 신앙은 예수님에게 어떤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II. 본론
1. ‘주님’의 의미
베드로는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지만, 그의 실제 삶에 있어서는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을 때,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는 진정한 주님과 종의 관계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정말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여겼다면,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말한대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를 따라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결국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는 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이가 진정한 주님과 종의 관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저 ‘주여, 주여’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믿음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예가 자기 주인을 부를 때 ‘주님’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의미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고,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 시편 23편의 약속이 다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2. 예수가 여러분의 주님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가 여러분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욥기35:10,33:4)
둘째는, 그가 여러분을 값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9:30, 고린도전서6:19-20, 7:22-23, 베드로후서2:1)
셋째는, 그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8:38-39)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님’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3. 내가 예수님의 종이 되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영적인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구원의 주인이신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나의 영혼을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둘째는, 혼적인 증거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나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주인이 되시게 해야 합니다.
셋째는, 육적인 증거입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여러분 각자에게 맡겨져 있는 소유물의 주인이 되시게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들 중에 어느 하나만 만족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야만 합니다. 주인이 취하라 하면 취하고, 버리라 하면 버려야 합니다. 주인이 십자가를 내려놓으라 하면 내려놓아야 하고 십자가를 지라 하면 져야 합니다. 주인이 머물러 있으라 하면 머물러 있어야 하고 주인이 나를 좇아오라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좇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주인에게 종이 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참 목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소유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고, 시편 23편의 모든 약속이 분명하게 이 땅에서도 성취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시는, 그의 종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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