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5:10, 창세기 39:1-10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7)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I.
서론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ain)’이라고 말하는 마태복음 5장의 “복 있는 자”가 되는 비결을 말씀으로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 마지막으로 “의를 위하여 핍받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천국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습니까?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런데 마태복음 5장 10절의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천국을
소유한다고 합니다.
II. 본론
‘핍박’이라는 말은 “도망친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무엇엔가 쫓겨서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 “핍박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먼저, 1. 핍박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다 천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게 되는 근원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본인의 실수 또는 잘못으로 인하여 오는 경우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거나, 지혜롭지 못한 언행으로 남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기
편안함 또는 자기 유익을 위하여 고의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경우에는 당연히 핍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피해를 입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경우의 핍박을 받으면서, “아, 나는 핍박을 받았으니 천국에 들어가겠지”라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둘째는 환경 탓으로 인하여 애매하게 핍박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남들에게 피해를 준
일이 없는데,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지난 9.11 사태가 일어났을 때, 억울하게 잃은 사람들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습니까? 그것이 그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러한 경우에 핍박을 당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천국 시민이 되겠습니까?
셋째는 의를 이루기 위하여, 다시 말하자면, ‘의(義)’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내가 무엇인가를 하다가 핍박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적인 핍박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윤리적 타락과 정치적 투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려고 하면, 나에게 핍박이 오고 손해가 올 것이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피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진리의 법칙에 의하면, “의 때문에 즉,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하여 핍박을 기꺼이 받는 자만이 2.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을
소유하는 참된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십시오.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에 보면, 요셉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였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말할 수 없이 많은 핍박을 받았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놀라운
복을 받았던 산 증인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3. 요셉의 비결을 배우고 실천하여, 천국을 소유하는 참된 복 있는 자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요셉의 첫 번째 비결은 (1) “나의 죄성(罪性)에 대처함”에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12
형제들 중 유일하게 그만이 하나님의 꿈을 받고 평생토록 하나님과 동행한 요셉이었지만,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죄의 습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위대함은, 자신이 육신의 소욕 앞에서 말할 수 없이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거기에 미리 대처하였던
점에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보십시오. 그의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와서 자기와 동침하자고 요청하였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와서 유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오히려 큰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였을까요? 요셉이 우리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너무나 잘 믿었기 때문에 유혹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본문 10절에 의하면,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디발의 아내와 함께 있지도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5장 3절에 보면, 음녀의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그 입은 기름보다 더 미끄러워서 어느 남자든지 넘어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8절 말씀에,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의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거기에 엤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에 큰 능력을 갖고 있어서,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 요셉처럼
미리 대처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술과 담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술자리에 가셔도 됩니다. 가서 전도하는 일을 하면 더욱
좋겠지요. 그러나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요셉처럼, 미리 대책을 세우십시오. 유혹을 멀리 피하십시오. 그 일로 인하여 핍박이 임한다 하더라도,
범죄 하여 천국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천 배 만 배 더 나은 일임을 기억하십시오.
요셉의 두 번째 비결은, (2) “그의 신뢰를
귀중히 여김”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지는 모습이 된 이유들 중 하나는 누군가로부터 내가 신뢰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별로
가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이 되면 하루아침에 배반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악이 들끓고 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예수님 배반 사건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하늘 비밀을 똑같이 다 알려주셨지만,
예수님이 신뢰해 주신 것에 대해 별로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배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믿음으로 지키는 반면, 주님 안에서의 형제들과 이웃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교인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다시 말하자면,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적당히 이용하여 자기 배만 불리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을 속이는 것도 신뢰감에 대한 배반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8절과 9절에 보면, 자기 주인이 자기를 신뢰하는 것에 대해 최고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 주인의 아내의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해 버립니다. 그
일로 인하여 핍박이 올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신뢰에 대해 쉽게 배반하는 사람은 주님의 신뢰에
대해서도 쉽게 배반합니다. 목사가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는 신뢰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요셉처럼
신뢰감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세 번째 비결은 (3) “하나님과 항상 동행함”에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였을 때, 잘은 모르지만 아마 요셉의 마음도 여러 번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 당시 왕의 시위대장의 아내였으니, 얼마나 젊고 예쁘고
매혹적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9절에 보면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할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그가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자기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계시고,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로 바쁘시게 지내는 하나님이라고 요셉이 생각하였다면,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 내서 자기 욕구를 채웠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 옆에 항상 따라다니고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마태복음 28장 끝 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주님이 항상 내 옆에 계심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악과 범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천국을 이미 소유한 자가 될 것입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복 있는 자 되기를 원하십니까? 천국을 소유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요셉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하여 애쓰는 자 되십시오.
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핍박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결단을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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