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애굽기 30:10-16
(10)아론이 일년 일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년 일차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네가 이스라엘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무릇 계수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6)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곳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
I. 서론
인간을 움직이는 힘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은 아무래도 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돈 몇 푼에
인간의 생명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에 경상북도 경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당(daily pay)을 받으면서 근무하던
직원이 자기 사장의 아들을 죽인 살인죄로 체포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일당으로 받을 15만원 중 밀린 돈 7만원을 받으러 사장 집으로 찾아갔던
강씨라는 그 사람은 사장이 없어서 돈을 받지 못하자, 방에서 자고 있던 4살 된 사장의 아들을 데리고 나가 근처에 있는 불 더미 속에 떠밀어
넣어 죽였다는 것입니다. 경찰에 붙잡힌 후에도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하다가, 같이 갔던 11살 된 아들이 “아버지가 그 아이를 불 속에 떠밀어
넣었다”고 진술하자, 할 수 없이 자백하였다고 합니다. 7만원이면 미국 돈으로 약 50불이 조금 넘습니다. 50불 때문에 무고한 어린아이가
생명을 잃었다고 하니, 그 돈의 위력이 얼마나 큽니까?
II. 본론
1. 대속의 법칙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도 마치 인간의 생명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의 속전”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세우신 대속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만 합니다. 민수기 3장 13절에 보면, 애굽에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모든 가정의 첫태생 아들을
살려주셨으므로,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면 가축을 잡아 제사를 지내듯이, 그들을 죽여서 하나님께 바쳐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위하여 “대속의 법칙”을 세우셨습니다. 민수기 3장 12절과 45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지파들 중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소유로 만드는 대신에 첫태생 아들들을 살려주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민수기 3장 4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
하였더니 일 개월 이상 된 처음 난 남자의 총계가 22,273명이었고, 39절에 보면 레위인 중 일 개월 이상 남자의 숫자가
22,000명이었습니다. 레위인이 273명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해 273명에 대해 한 사람마다 정확하게 5세겔의
돈을 성전에 바치게 하여 그 생명을 대신하게 하였습니다. 돈으로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속전”입니다. 생명의 속전을 낸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전염병이 임하지 않았고 그들의 소유물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생명의 속전은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2. 생명의 속전의 의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속전을 내게 하신 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명의 속전을 내고
구원받은 모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똑같은 값으로 매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속전을
낸 사람들은 누구든지 열등감 대신 동등감을 소유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생명의 속전을 냄으로써 외로움의 고통 대신에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하였다는 공동체 의식, 수치심 대신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자부심, 혼란감 대신에 하나님의 법칙을 따르는 명쾌함, 그리고
지루하게 인생을 사는 대신에 하나님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참여의식을 갖게 됩니다. 열등감, 외로움, 수치심, 지루함은 죽음의 열매를
가져오지만,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동등감, 공동체의식, 자부심, 명쾌함, 적극적 참여는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속전을 낸
결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풍성한 3. 생명의 열매를 맺으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첫째로,
1) 정확하게 계수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계산하시는 분입니다. 반드시 완전한 법칙에 의하여
움직이십니다. 그 법칙을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계산하는
생활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민수기 35장 31절에 의하면, 실수로 살인한 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고 살려줄 수 있지만,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에게서는 결코 생명의 속전을 받을 수 없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계산법을 정확하게 지키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주어집니다.
미국의 역사상 최고 갑부 중에 ‘록펠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여섯 살 될 때부터 정확하게
십일조를 계산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나중에 큰 부자가 된 후에는 십일조를 계산하는 직원만 수십 명을 둘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가 끝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였고 정확하게 계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로, 2)
레위인을 부흥케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운 법칙은 이스라엘의 12지파의 기업이 레위족이라는 한 지파를 감당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칙은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에, 3,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만약에 레위지파가 많아지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소유인 레위인을 위하여 12지파에게 복을 주시게 되어 있고, 레위인의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12지파의 인구와 소유물의 숫자도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심히,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레위인을 먼저 공궤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레위인은 혈통적 레위인이기보다는 기능적 레위인입니다. 유대인들은 13세 된 자녀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뛰어나고
재능이 겸비된 아이들을 뽑아 ‘랍비’가 되게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민족의 지도자로 키워냅니다. 더 많은 랍비들을 키워내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적은 민족으로 가장 큰 힘을 갖게 된 유대인들의 지혜입니다.
셋째로, 3) 거룩함을 보호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중심이 무너지면 변두리가 아무리 강하였다 하더라도 곧 무너지고 맙니다. 나라를 잃고 수천년 동안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핍박을 받은
민족이었지만,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는 항상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핍박과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거룩한 성전만큼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성전의 거룩함이 사라지면, 그곳에 바치는 “생명의 속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물에 불과합니다. 역대하 26장 16절에 보면, 강한 나라를 이룬 웃시야 왕이 마음
교만하여져서,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자기가 직접 분향하려고 하였으므로 큰 재앙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우습게 여긴 결과였습니다.
가정에는 ‘아버지’라는 상징적인 중심인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아버지가 당당한 권위를
행사할 때 그 가정이 평안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만약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권위를 무너뜨리면, 그 가정은 이미 무너진 것과 같습니다.
나라가 평안하려면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중심 인물이 든든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장관들이 대통령을 비난하면 그 나라는 얼마 가지 못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 속에는 교회라는 상징적인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극히 거룩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제단의 거룩성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III. 결론
천국에 간 어떤 성도가 베드로에게 지옥을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데리고 지옥으로 갔는데, 마침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큰 식탁에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뼈만 앙상한 모습이고 손에는 1미터가 넘는 긴 젓가락을 갖고 있었습니다. “식사 시작”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 자기 입에 음식을
집어넣으려고 아우성이었지만, 음식은 모두 바닥에 떨어지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데리고 천국으로 갔는데, 식탁 모양과
차려진 진수성찬의 음식이 똑같았고, 1미터가 넘는 긴 젓가락을 갖고 있는 것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젓가락으로 서로 다른 사람을
먹여주면서 즐거워하더랍니다.
성도 여러분, 생명의 열매를 하나님께 풍성하게 드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복을 받기 위해 나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생명의 속전을 드리는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법칙대로 정확하게 신실하게 계수 하여
드리는 지혜를 가집시다. 하나님의 회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이 부흥되게 함으로써 구원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게 합시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한 거룩한 곳이 되게 하고 그 거룩함이 더해질 수 있도록 합시다.
그리하면 여러분 심령 속에, 여러분 가정 안에, 여러분에게
맡겨진 기업 안에 생명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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