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역대상 29:6~14
(6)이에 모든 족장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감독이 다 즐거이 드리되 (7)하나님의 전 역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8)무릇 보석이 있는 자는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부쳐 여호와의 전 곳간에 드렸더라 (9)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10)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12)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마태복음 6장 9절 이하에 기록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로 끝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괄호로 묶여 있는데,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사본들 중에 어떤 것들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기도의 마무리에 의미를 둔다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한 후에 '그 나라와 그 권세와 그 영광'을 위해 기도하였는지, 반드시 돌이켜 보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9장에 있는 다윗의 기도문은 성전건축 헌물을 드린 후에 기도한 내용인데, '그 나라/그 권세/그 영광'에 관한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그 나라(천국)'에 대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의 자세에 관련된 것입니다.
11절 전반부에서 다윗은 "천지가 다 주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즐거이 드리고 기쁨을 누렸습니다.(9절) 또한 "받은 것으로 드렸을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4절)
그리스도인은 '그 나라'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나라에 집착하는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허공을 치는 기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고 참된 감사의 마음으로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다윗과 백성들의 기도가 그러한 마음에서 우러나왔습니다. 만약에 기도는 천국을 행해서 드리면서 그 마음과 행동으로는 완전히 세상으로 행하여 움직이고 있다면, 도대체 그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 나라를 잊지 말라! 기도의 자세를 잊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2. 둘째는, '그 권세(하나님의 권세)'에 대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기도의 능력에 관련된 것입니다.
11절 하반절에서 다윗은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12절)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 없는 기도는 무기력합니다. 반드시 응답받을 것을 믿고 기도했다면, 그 기도문의 내용대로 즉시 실천해야합니다.
다윗왕의 백성들은 왕의 제안에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물에 발을 들여놓을 때 비로소 요단강 물이 멀리 물러나고 온 백성들이 마른 땅으로 건너갔던 것을 잘 압니다. 의심하며 기도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그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 권세를 잊지 말라! 기도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3. 셋째는 '그 영광(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에 대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목적에 관한 것입니다.
10절에서는 "영원히 송축을", 13절에서는 "주께 감사하며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겠다" 말을 하기는 쉽기만, 기도는 그렇게 많이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드려질까요?
성경은 "믿음에 견고하여짐으로써"(롬4:20), "몸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고전6:20),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고 넘칠 때"(고후4:1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심으로써"(롬15:7),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참으로써"(빌1:11)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영광'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성전을 짓도록 허락해 달라던 다윗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도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솔로몬은 지혜를 달라는 기도에 응답을 받았지만, 세상의 영화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그의 인생 말년에 추한 모습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 영광을 잊지 말라! 기도의 목적을 성취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단지 15분 뿐'이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생명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한 젊은이가 주인공입니다. 이 젊은이는 어려서부터 그 총명함을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20대에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그의 뛰어난 논문을 보고 심사 위원들은 격찬했으며, 이제 학위를 받을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치 않았고, 본인도 자신에 넘쳐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에 이상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정밀 검사 결과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이 나오고 그의 운명은 1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죽음의 선고가 내려집니다. 15분! 그는 침상에 누워 있습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5분이 금방 지나가고 10분만 남았습니다.
이 때 그가 누워 있는 병실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듭니다. "억만장자인 당신의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와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시오." 하지만 죽음을 앞둔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운명의 시간은 8분으로 줄어듭니다.
그 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합니다. "당신의 학위 논문은 우리 학교 개교 이래 가장 훌륭한 논문으로 평가되었으며, 올해의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러나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운명의 시간은 마지막 3분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때 또 하나의 전보가 날아옵니다. 그가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의 결혼승낙입니다. 세 통의 전보들을 받는 순간마다 그에게 기쁨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전보도 그 운명의 15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드디어 15분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세 통의 전보를 손에 쥔 채 숨을 거둡니다. 그러고는 연극이 끝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혹시 '그 나라'와 상관없는 기도를 하지 않았는지. '그 권세'를 의심하며 기도하지 않았는지. '그 영광'을 잊었거나 내가 가로채는 기도를 하지는 않았는지. 그리하여 응답 받고 은혜와 복을 이 땅에서도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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