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2, 2012

“사랑보다 작은 믿음” (8/24/2003)

본문 : 고린도전서 13:1~13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I. 서론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있어야만 하는 것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그 세 가지 중에서도 사랑이 제일 합니다. 여기서 ‘제일’이라는 말은 ‘메가’라는 헬라어 단어의 비교급입니다. 순서적으로 볼 때, 사랑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소망이 크고 그 다음으로 믿음이 온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가장 크고(중요하고) 그 다음이 소망이고 그 다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큰 믿음을 가짐으로써 소망을 얻으려 하고, 믿음이 커야 비로소 사랑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하면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 행동을 하든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상식과 질서를 무시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외치면 믿음이 더 크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참으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믿음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다보니, 소망과 사랑의 중요성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개신교도인 미국 병사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마침 후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동료들은 그의 시체를 그대로 두고 떠나기 싫어서 근처에 있는 성당을 찾아가 그 성당 구내에 있는 묘지에 묻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담당 신부는 “미안합니다만, 카톨릭 신자가 아니면 우리 성당 구내 묘지에 묻을 수 없는 것이 규칙입니다.” 시간에 쫒기고 있던 병사들은 하는 수 없이 그 성당 울타리 바로 밖에 시체를 묻고 서둘러 후퇴하였습니다.
며칠 후 다시 그 지역을 점령하게 된 병사들이 친구를 생각하며 그 성당을 찾아갔지만 울타리 바로 밖에 만들었던 그 무덤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성당의 문을 두드렸을 때, 신부가 나와서 이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여러분이 떠난 후에 나는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성당의 울타리를 옮겨놓았습니다.” 사랑은 믿음의 방법이나 믿음의 깊이를 다 초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랑장(the chapter of love)"이라고 알고 있는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3장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사랑’의 세 가지 태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사랑보다 작은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II. 본론
첫째로, 사랑보다 작은 참된 믿음은 1. “생명을 살리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생명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사랑을 무시하는 믿음은 생명을 죽이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사울은 굉장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던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일에 열심히 앞장섰습니다. 자기 믿음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믿는 자들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보다 오히려 생명을 죽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 믿음을 자랑하면서 남들의 기를 죽이고 소망을 빼앗아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요즈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살하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와 불교를 합치면 거의 80% 이상의 국민이 종교를 갖고 있는데, 믿음을 갖고 있는데, 왜 이런 불행한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는 것입니까?
잘못된 믿음의 태도 때문입니다. 믿음이 최고라는 오해 때문입니다.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은 믿음의 태도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배반하는 제자까지도 끝까지 살리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우리도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1-3절)

둘째로, 사랑보다 작은 참된 믿음은 2. “자신을 희생하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의 희생을 가장 가치 있게 여깁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의 기복신앙은 하늘 나라의 이 진리를 크게 왜곡시켜 왔습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하나님 이름으로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성공하고 잘 살고 건강하게 오래 살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실패하고나 가난하거나 아프면 믿음이 약하다고 손가락질합니다. 세상의 부와 권세와 명예를 위해 달려가는 많은 교인들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히고 있습니다. 자기들만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데모를 주동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기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남들보다 내가 가장 큰 복을 받아야 하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가 잘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고 십자가 위에서 자기 희생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자들이라면 예수님의 이 모습을 본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기희생을 기뻐하는 참된 사랑의 신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4-7)

셋째로, 사랑보다 작은 참된 믿음은 3. “온전함을 향해 변화되는 믿음”입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 부족한 우리 인간들을 온전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온전함을 향해 겸손과 순종의 자세로 날마다 변화되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율법사들은 어떤 믿음을 가졌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내가 최고의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진리를 선포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죽였던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구태의연한 믿음을 가지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믿을수록 점점 더 많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할 터인데, 오히려 믿음의 년수가 많아질수록 더 변화되지 않는다면, 자기기준만을 주장하면서 진리를 배척하고 진리 추구자들을 정죄한다면, 어떻게 참된 믿음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진리의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의 사람들을 진리에 따라 변화시키는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믿는자라면, 그 진리 앞에 점점 더 겸손해지고, 점점 더 많이 변화되어 가야만 하지 않겠습니까?(8-12)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참된 믿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 앞에 작아지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떤 믿음의 말이나 행동이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를 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면서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생명을 살리는 믿음 2.자신을 희생하는 믿음 3.온전함을 향해 날마다 변화되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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