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8, 2012

“예수의 행복론” (누가복음 6:17~25) [2007-9-23]



본문 : 누가복음 6:17~25 9/23/2007
(17)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19)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20)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각 사람의 최고 열망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높아지면, 더 소유가 많아지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도 합니다. "인생은 행복을 위한 도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열심히 살면 누구나 행복해져야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빈손으로 태어날 때와 비교해 본다면, 더 많이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더 발전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왜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요?
이 세상에는 세 가지 '행복론'이 있습니다: '소유의 행복론' '무소유의 행복론' 그리고 '예수의 행복론'입니다.

1. 소유의 행복론
'소유의 행복론'은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해진다."는 주장입니다. 물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많이 가질수록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CEO 전성시대'라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사장님' '회장님'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요즈음에는 'CEO'라는 말을 써야 더 멋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큰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어떤 'CEO'는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부회장이야” “일 시키고 기다릴 때 괴로워” “직급 오를수록 외로움의 강도도 커지더라”고 말했답니다. 한마디로 하면, 그들은 자신을 행복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돼 세간의 부러움을 샀던 미국인 사업가 잭 휘태커(59) 씨가 지난 19일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참담한 인생 내리막길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는 복권에 당첨되기 전에도 1700만 달러 규모의 송유관 사업을 하던 백만장자 사업가였지만 2002년 '파워볼' 복권 사상 최대인 3억1,490만 달러의 당첨금(실수령액 9,300만 달러)을 받게 되면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언론은 그의 음주와 도박, 여자관계 등 사생활을 수시로 파헤쳤고 주변에는 물질적인 도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카지노 여직원들이 그의 폭력적 행동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하는 등 모두 460건에 이르는 법정싸움에 휘말렸습니다. 돈 이야기만 하는 친구들과도 사이가 멀어지면서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부인과는 이혼 절차를 밟고 있을 정도로 불화가 깊어졌으며 딸은 암 투병으로 고생 중입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아끼던 손녀딸의 죽음입니다. 휘태커 씨는 몸값을 노리는 납치범에게서 보호한다는 이유로 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에게 맡겼는데,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손녀는 마약에 빠져들었고, 결국 마약 과다복용으로 17세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휘태커 씨는 "손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당첨금을 모두 되돌려주고 싶은 심정"이라며 "사람들을 많이 도운 자선가로 남고 싶지만 사람들은 나를 복권에 당첨된 미치광이로만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곧 행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2. 무소유의 행복론
이와는 반대로 '무소유의 행복론'은 "욕심 버릴수록, 세상 버릴수록 행복해진다"는 주장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의 황금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면, 세상은 왜 이토록 '소유'로 인한 문제들이 많은 것입니까?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은 왜 그토록 학위를 자랑하고 감투싸움을 하며 부정부패에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까?
'무소유의 행복론'은 허무주의에 불과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현상들인 것입니다. 무소유 자체가 곧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3. 예수의 행복론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수의 행복론'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그리고 '고난당하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입니까? 아마도 가장 납득하기 힘든 말씀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 의미를 다시 살펴본다면,
본문 20절에서 "가난한자가 천국 소유한다"는 말씀은 "천국을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는 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천국비유 중에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값진 진주를 산 진주장사"에 관한 말씀이 그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렇게 최고의 가치를 얻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해 질 수 있는 사람이 곧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21절에서 "이제 주린 자가 배부름을 얻게 된다" "이제 우는 자가 웃게 된다"는 말씀은, 신앙으로 인한 소망 때문에 현재의 실패와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사람의 마음 속에 비로소 행복이 깃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2절에서 "인자를 인하여 고난당하는 자는 하늘에서 상이 크다"는 말씀은, 천국의 상급을 위해 이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사명 감당하는 사명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을 실제적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복이 있나니"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복'이야말로 진정한 그리고 영원한 행복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행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물질을 생산하지 않고 누릴 수 없듯 행복도 산출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참되고도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스스로 이 '예수의 행복론'을 깊이 깨닫고 열심히 적극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천국을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으로 인한 소망 때문에 현재의 실패와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의 상급을 위해 이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사명 감당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진정한, 그리고 영원한 행복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짓된 행복론에 속을 것이요, 영원한 불행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분이셨지만 "천국의 주인"이신 동시에 "행복의 근원"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는 '예수의 행복론'을 마음에 간직하고 열심히 실천할 때 "세상에 대한 욕심 버리는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이미 천국을 소유한 행복한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의 행복론'으로 인하여 영원히 행복한 성도되기를, 천국의 행복을 이 세상에서도 맛보며 오늘을 사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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