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하나 됨의 위대함” (5/9/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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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0:25~39
(2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33)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37)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39)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하나가 여럿으로 나뉘는 경우와, 하나가 변함없이 하나로 있는 경우, 그리고 여럿이 하나로 합쳐지는 경우가 있다면, 이 세 가지 경우들 중에 어떤 것이 가장 힘이 크고 어느 것이 가장 약할까요?
정글 속에 사자와 소 세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자는 배가 고플 때마다 소들을 공격하려고 하였지만, 그 소들은 항상 같이 다녔고, 번갈아가며 망을 보았기 때문에 사자가 도저히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꾀를 내어, 소 한 마리씩에게 은밀히 접근하여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이것봐, 너는 저 두 소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저 소들은 네가 없을 때 너를 얼마나 욕하는지 알아?’ 그러자 곧 소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고 흩어졌습니다. 사자가 한 마리씩 공격하여 모두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들이 더 하나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여럿이 모여 하나 되는 정도가 힘을 결정합니다. 완전하게 하나 될 수 있다면 완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하나 되는 것은 오직 삼위일체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본문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28절과 29절에서 ‘아무도 저들을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39절에서 ‘아무도 예수를 잡지 못하였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하나 되지 못하는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보아도 하나 되지 못합니다. 부부간에 분쟁이 있고 다툼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싸움이 있습니다. 목사와 교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그저 한탄만 하고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 되신 것을 본받아 ‘하나됨’을 이룩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첫째로, I. 같은 꿈을 가지면 하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꿈이 완전하게 같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가깝다 하더라도 속으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면 그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분열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분명한 꿈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꿈을 함께 꾸고 이루어 가는 자가 있습니까? 만약에 이미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됨의 위대함을 이미 맛보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앞으로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그 위대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이 꾸고 있는 꿈을 함께 이루자고 한다면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편이나 아내의 꿈에 동참해 준다면,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 같은 꿈을 이루어간다면, 목사와 성도들이 서로 같은 꿈을 성취해 간다면, 그 가정과 교회는 엄청난 위대한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둘째로, II.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주면 하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 물질적 우주 안에 성취시키기 위해 인간과 똑같은 몸을 입고 물질화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인자(Son of Man)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완전하게 돌보셨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남들로부터 뺏을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떤 사람도 그에게 가까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싸움만 있게 됩니다.
모든 인간에게 예외 없이 부족함이 있고 단점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부족함을 채워주는 자가 있어서, 서로 하나 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누구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습니까? 만약에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면, 하나됨의 위대함을 이미 맛보고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주겠다고 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목사와 성도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면 그 관계 속에서 위대한 어떤 결과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로, III. 멍에를 함께 메면 하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고 병자를 낫게 할 때뿐만이 아니라, 유대인 관원들에게 핍박 당할 때에도 함께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도 귀를 기울이셨으며,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나누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이셨습니다.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자매라 하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서로 줄 수 있는 이웃이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생긴 모양입니다.
좋을 때에는, 자기가 무슨 도움을 받을 것이 있을 때에는 열심히 찾아오고 친한 것처럼 보이다가, 상대방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는 멀리 도망가 버리는 얌체족들이 있습니다. 얌체족은 ‘분열 창조자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고 결국 떠나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의 멍에를 함께 지고 있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하고 있다면, 하나됨의 위대함을 맛보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못하였더라도, 앞으로 그렇게 하면 반드시 그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 고통, 멍에를 함께 나누어 지어주겠다고 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목사와 성도 사이에, 서로 상대방의 아픔을 알아주고 함께 동참한다면 하나 됨으로 말미암는 위대한 일들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먼저 여러분 마음 속에 하나됨을 이루는 사람 되어가기를 원합니다. 하나 되는 부부, 하나 되는 온전한 가정 이루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 되는 온전한 하나님 가족, 위대한 자녀, 능력의 자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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