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10, 2012

천국 복음 “나의 평안을 주노라” (5/27/2001)

본문 : 요한복음 14:22-27

(22)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I. 서론
오늘날 현대인들 중에 아무런 문제없이 인생을 살아간다고 고백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를 극복하거나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의 도움을 얻으려고 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삶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교회와 성당에 나가고 또는 절과 사원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들이 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참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1998년에 한국 갤럽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개신교의 경우 47%가 ‘구원과 영생을 위하여’, 38%가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그리고 7%가 ‘건강과 재물의 축복을 위해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천주교의 경우에는 28%가 ‘구원과 영생을 위하여’, 65%가 ‘마음의 평안을 위하여’, 그리고 4%가 ‘건강과 재물의 축복을 위하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불교의 경우에는 2%만이 ‘구원과 영생을 위하여’라고 대답한 반면, 73%가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그리고 18%가 ‘건강과 재물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대답들을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는 대답이 거의 70%에 육박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가장 소망하고 바라는 것이 바로 “마음의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그 평안을 얻기 위해 절에 가기도 하고 교회와 성당을 찾아가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 “마음의 평안”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마음의 평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참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II. 본론
대개의 사람들은 주로 1. 스스로 찾는 평안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찾고 노력하여 무엇이든지 많이 소유하게 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편으로 물질을 축적합니다. 그러나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많이 쌓아서 마음의 평안을 누려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많다고 해서 근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열심히 도를 닦아서 마음의 평안을 누려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갈등은 끝까지 그의 마음을 괴롭힐 것입니다. 이런 방법들은 다 자기 스스로 얻어보려는 태도입니다. 성취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에 보면, 부자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가을에 많은 곡식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너무 많아서 쌓아둘 곳이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고민하다가 원래 있던 큰 창고를 헐어버리고 더 큰 창고를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곡식과 물건을 가득 쌓아둔 후에 자기 스스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 부자의 재물은 물질뿐만 아니라 지식과 명예와 권세 등도 포함합니다.
이 부자의 상태가 바로 스스로 평안을 찾아가는 인간이 최고로 바라고 소망하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멍에입니다. 그 멍에는 결국 영원한 죽음이라는 슬픈 종말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에 보면, 어느 날 하나님이 그 부자의 영혼을 도로 찾아가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부자는 열심히 모으다가, 자기를 위해서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 멍에 아래에서 씨름하던 불쌍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이러한 평안을 “세상이 주는 평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참된 평안이 아닙니다. 육신적으로는 평안을 줄지 몰라도 마음의 평안을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이러한 평안만이 존재한다면, 우리 인생에는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2. 주님이 주는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예수님이 그 평안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평안을 우리에게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가복음 4장 35절 이하에 보면, 어느 날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심한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힐 정도가 되었습니다. 노를 저어가던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 뒷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평안하게 잠을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환경과 상황을 초월하는 완전한 평안입니다. 죽음조차도 빼앗지 못하는 평안입니다.
왕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신하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왕은 죽기 전에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죽어 가는 신하에게 왕이 말하였습니다. “나의 충직한 신하여, 자네가 나를 위하여 인생을 바쳤으니, 내가 자네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네. 소원이 무엇인가?” 그러자 신하가 대답합니다. “예, 전하, 저에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주십시오.” 왕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지만, 생명에 대해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네. 미안하네.” 그러자 신하가 죽어가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나는 세상의 왕을 모시는 일에 내 인생을 허비하였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좀 더 시간을 보냈더라면...”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강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가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세상과 싸워서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그 평안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 평안은 우리가 스스로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아무 값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그 3. 평안을 받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평안을 소유하고 있고 또한 내어줄 수 있는 1) 공급자를 만나야만 합니다. 우리말 속담에, “별을 따려면 하늘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평안의 근원이요 공급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평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마음의 평안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의 심령의 문 앞에 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문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그리스도 즉 영생의 선물을 주시는 구원주로 받아들이십시오.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여서 그 분을 소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참된 평강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둘째로, 2) 내 손을 내밀어야 그 평안을 내가 받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평안을 받았다는 말을 아무리 많이 들은들 무엇하겠습니까? 그 평안이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받으려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만한 자격이 전혀 없지만, 주님께서 누구에게든지 무조건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저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손을 내밀면 주님이 평안을 공급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말 속담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주님의 선물은 오직 손을 내미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배고픈 거지가 체면을 차리면서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누가 그에게 먹을 것을 주겠습니까? 마음의 평안을 원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참된 평강이 임하겠습니까?
셋째로, 3) 받은 것을 간직해야 그 평안이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귀한 선물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내버린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겨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언 3장 1절과 2절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눌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알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평강의 선물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주님으로부터 평강의 선물을 풍성하게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거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삶을 산다면 곧 그 선물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사야서 48장 18절에서도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법을 깨닫고 그의 명령을 열심히 준행하여 주님으로부터 받은 평강의 선물을 영원히 간직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III. 결론
우리가 스스로 찾아가는 방법으로는 참된 마음의 평강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났던 죄인이으므로, 하나님과 다시 화목된 관계를 이루지 않으면 결코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평강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아무 값없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로 나아가 손을 벌리기만 하면 그가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의 선물뿐만 아니라, 참된 마음의 평강까지도 함께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선물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에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원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술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영접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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