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와 보라!” (5/2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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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35~46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전에는 얼굴을 화장하는 것이 여성들만의 전유물이었는데, 요즈음에는 남자들도 얼굴 화장을 합니다. 얼굴 화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옛날 원시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이 악한 영이 되어, 자기가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로 와서 괴롭힐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얼굴에 이상한 색을 칠하거나 가면으로 변장하여 그 영들을 속이고자 하였답니다. 그 관습이 발전되어 얼굴 화장으로 변하였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신문에서, ‘샤오위’라는 여인이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너무 못생겼다고 이혼을 당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녀는 30이 다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하였는데, 2002년 12월에 한국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알게되어 얼굴 성형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 많은 남자들이 결혼을 제의해왔고, 젠평이라는 미남 청년과 결혼하였습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딸을 낳았는데, 너무 너무 못생겼더랍니다. 남편은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하였고, 심지어는 연구소에 의뢰하여 유전자(DNA) 조사까지 받았습니다. 아내는 결국 자신이 성형수술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되었고, 남편이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위자료 10만불을 남편에게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본질이 바뀌지 않은 채 겉으로만 꾸미게 될 때, 스스로 바뀌었다고 착각하며 살게 될 때, 그것은 비극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2차 대전 당시에 일본군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였을 때의 일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은 그 때 이미 최고 첨단 장비인 레이더를 실전에 배치한 상태였습니다. 진부만 폭격이 있던 날 아침, 레이더에는 수많은 점들이 나타났습니다. 책임을 맡고 있었던 두 병사들 중 한 사람은 레이더가 고장났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다른 한 병사는 이것을 정보센터에 보고하였습니다. 그 날 정보센터에 근무하던 책임자는 이 점들이 미군 폭격기일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주만은 쑥대밭이 되었고, 많은 배들과 함께 수 천 명의 군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잘못된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의 신앙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믿음이 좋은 것 같으나 고난이 오면 태도가 돌변하고, 겉으로 또는 말로는 굉장한 믿음을 가진 것 같은데, 생각하는 것이나 삶의 모습은 전혀 변화되지 않고 불평불만과 슬픔 속에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참된 신앙을 갖고 있다고, 구원받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I. 오늘 본문은 예수를 알게 된 두 제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6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소개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33절에서는 ‘성령으로 세례 주는 이’로, 그리고 34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 중 두 사람이 예수를 좇아갔습니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에 동의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만나기는 하였지만, 지식으로 예수님을 알았지만, 그것은 아직 진정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37절에 보면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을 ‘랍비여’라고 불렀습니다. ‘랍비’라는 말은 ‘선생님’이라는 뜻인데, ‘당신은 선생님이고 우리는 학생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가르쳐주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당신에 관한 정보를 알고싶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지식으로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9절에서 ‘와 보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우리 생각 속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식만능주의가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은 서양적 사고방식인데, 무엇이든지 머리로 이해하면 그것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이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은 체험이 무시된 지식만의 신앙을 고집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신앙적으로 무능력하기 쉽습니다. 46절에 등장하는 나다나엘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성경 지식에 기초하여,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선입견은 예수님께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식이 무시되는 체험만능주의도 문제입니다. 이것은 주로 동양적 사고방식인데, 느낌과 체험을 중요시합니다. 이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은 오직 체험하는 신앙만이 참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주관적인 환상에 따라 잘못된 길로 빠지는 위험이 있습니다.
천국에 갔더니 머리만 가득 들어 있는 방과, 심장만 가득 들어 있는 방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천사들에게 물어보니, 머리만 있는 방은 장로교인들의 방이고, 심장만 들어 있는 방은 감리교인들의 방이라고 하더랍니다.
참된 신앙에 있어서 체험과 지식은 기차의 두 레일과 같습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와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II. ‘와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네가 직접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뿐만 아니라, 감정과 의지로도 체험함으로써 일부분으로가 아니라 전체성으로 주님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살아있는 지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에게 말로 가르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부시 대통령을 안다’는 말과 ‘내가 부시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안다’는 말과 ‘내가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III. 예수님을 체험할 때 비로소 변화됩니다.
41절과 45절에서 제자들은 ‘우리가 메사야를 만났다.’고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지 않고 ‘주님‘이라고 부르며 따라가는 참된 신앙을 갖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았고 복음 증거자의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승천하여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보혜사 성령을 받음으로써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보혜사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체험입니다. 그 체험이 있게 될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살아있는 생생한 지식이 되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제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감정과 느낌으로도 그리스도인임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기쁨과 감사가 여러분 심령 속에 항 상 있습니까? ‘와 보라!’ ‘내게로 와서 네가 직접 체험해 보라!’고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직접 교제를 나누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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