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복의 근원이 되기까지” (5/30/2004)



본문 : 창세기 11:27~12:4
(27)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30)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인간들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부르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못들을 뿐입니다.
Anton Chehop이 쓴 <비탄>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Iona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마부가 아들을 잃고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슬픔을 말하고싶었습니다. 눈치를 살피다가 손님들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며칠 전에 제 아들이 죽었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손님은 ‘무슨 병으로 죽었나요?’라고 대답하면서, 마차의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하였습니다. 두 번째 손님은 ‘사람이란 모두 죽는 법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Iona는 숙소로 돌아와 동료에게 말을 붙여보았지만, 피곤하다고 하면서 금방 잠들어버렸습니다. 불쌍한 Iona가 드디어 이야기 상대를 생각해냈는데, 그가 찾아간 곳은 그의 말이 먹이를 먹고 있는 마구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예외 없이 똑같이 부르신다면, 아마 하나님께서도 비탄에 빠져 있으실 것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인간이 너무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이민의 삶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테러 전쟁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나도 아브라함처럼 될 수 없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봅니다. 본문 2절과 3절에 보니,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으며,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고, 그에게 복을 주는 자들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특별 대우를 받았겠지..’ 또는 ‘아브라함은 나같은 사람과는 굉장히 달랐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느날 갑자기 부름받았다. 쉽게 응답했다. 단번에 성공했다.’고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털어놓습니다. ‘하나님, 나는 왜 아브라함처럼 특별대우 안 해 주시나요?’ 또 어떤 성도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스스로 포기합니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아브라함처럼 되겠나...’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복의 근원이 될 자격이 전혀 없는 것입니까?

I. 아브라함의 환경을 살펴봅시다.
본문 28절에 보니, 아브라함의 형제 중에 하란이 결혼하여 딸을 낳고 갑자기 죽었다고 합니다. 굉장한 비극이 그의 가정에 찾아온 겁니다. 30절에서는, 아브라함이 결혼하였지만 자식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식이 없다는 것은 큰 불행이요 저주였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31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부모가 고향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해 이민을 떠났지만 중간에 목적지가 변경되어 하란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 속에 고난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마 아브라함도 고뇌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4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75세가 되기까지도 하나님께서 뚜렷한 응답을 주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브라함을 특별대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형편은 지금 어떻습니까?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못한 상태에 있습니까? 그러한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다고 핑계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그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당한 상황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II. 그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1절에서 보는 것처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말에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해도 너무하시는 것 아닌가요? 이미 많은 고통을 당하였고, 고향을 떠나왔는데, 이제는 본토 친척 아비집까지 떠나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끼니를 걱정해야 할 상황인데,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무엇을 내 놓으라 하시고...
말이 안 되는 것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목적지를 알려주어도 어려운 상황인데, 그것을 알려주시지도 않고 무조건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몰인정하신 것 같고,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러한 명령을 주실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모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마지막 기도 장면을 보면, 예수님의 고난이 갈수록 태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범을 보인 후에, 히브리서 2장 8절에서 증거하는 것처럼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III.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 세상의 소리와 경험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리를 선택하였습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것을 후회하고 전에 즐기던 세상과 과거에 미련을 두면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선택할 때 완전하게 선택하였습니다.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녀들이 오히려 믿음을 버리고 세상에 빠지게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녀들에게 믿음을 최고의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증언합니다. 대를 이어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면 반드시 ‘복의 근원’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형제자매들에게, 그리고 아웃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서 배웁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서도 하나님의 소리를 선택하고, 뒤돌아보지 아니하는 완전한 선택을 하며, 자녀들에게 최고의 유산으로 물려주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민족에게 복의 근원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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