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13, 2012

“가인의 분노” (4/25/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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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4:1~12
(1)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8)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며칠 전에 한국의 어느 지방에서 자기 김밥을 아무 말 없이 먹었다는 이유로 친아버지를 죽인 고교생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사건의 결과만 본다면 상당히 우발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학생이 평소에 아무 문제 없이 착하게 살다가, 김밥 하나 때문에 갑자기 자기 아버지를 죽이게 되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학생의 마음 속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분노가 쌓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폭발되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러한 끔찍한 죄를 짓게 되었을 것입니다.

I. 가인의 분노의 원인과 결과
그렇다면 분노(Anger)는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마음 속에 분노해서도 안 되고 분노를 느껴서도 안 되는 것일까요? 분노하는 것 자체가 죄인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공생애 중에 크게 분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희생제물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거래되고 동전 바꾸는 자들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등, 합당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예수님이 크게 분노를 나타내시고 성전을 청소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거역하는 모습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반드시 있어야 할 분노이고 거룩한 분노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화를 낼만한, 근거가 있는 분노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그렇게 화나게 만든 근거를 제거하든지 또는 그 문제를 해결하면 분노도 깨끗하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근거 없이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를 마음에 계속 품는다면 그 분노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분노는 시간이 흘러갈 때 기억 속에서는 잠시 사라진다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폭발이 되면 나를 삼켜버릴 만한 무서운 힘으로 되살아납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를 죽이든지 남을 죽이는 살인 병으로 발전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자기 동생을 죽인 가인의 분노는 근거 없는 분노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그가 분노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그가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에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5절에서 보듯이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자기 감정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형편과 사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의 일시적 감정을 통제하는 일에 실패하는 자였습니다. 6절에서 보듯이, 그의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노를 스스로 확대시키는 습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그는 자신이 담당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의 소유자였습니다. 9절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런 사람은 희생양을 찾아서 거기에 책임을 전가시키고 자신의 분노를 거기에 쏟아 부으려고 합니다.
그 결과로 그는 동생을 고의적으로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근거 없는 분노를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그 분노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6절로 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II. 가인의 분노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어떻게 죄 없는 아벨을 죽일 수 있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에게도 가인의 모습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사소한 자극을 받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분노가 폭발하고, 스스로 제어하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도 ‘가인의 분노’가 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7절에서 말씀하는 ‘죄의 소원 desire of sin’이 들어 있고, 자기 스스로를 또는 남들을 죽일 수 있는 어떤 에너지가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오히려 죄의 열매를 맺힘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믿음의 형제들과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기뻐하고 선을 행하기를 좋아하는 ‘내 속의 아벨’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III. 우리는 이러한 근거 없는 분노에 희생되지 말아야 하겠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근거 없는 분노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첫째로, 자기중심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사랑하였다면,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를 이해하였다면 그의 마음에 결코 분노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군병들에 대해 ‘저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둘째로, 떠오르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분노의 감정을 전혀 갖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가 합당한 것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분노인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이성으로 분명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만약에 가인이 자기 마음 속에 떠오르는 그 분노를 이성적으로 분별했다면 그 분노를 즉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스스로의 책임을 이행하는 성숙함으로 발전해 가야 합니다. 만약에 가인이 자신의 예물이 열납되지 않은 것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였다면, 결코 그의 마음 속에 불합리한 분노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분노가 수시로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분노를 다스리는 자와 다스리지 못하는 자 그리고 알면서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분명하게 다릅니다.
분노가 열매를기 전에 다스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고, 감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하며, 스스로의 책임을 이행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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