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6:13~25
(13)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21)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이름은 우리의 삶의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의 의미가 되새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의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요즈음 아파트들을 많이 짓는데, 똑같이 지어 놓아도 어떤 아파트는 인기가 믾은 반면, 어떤 아파트는 인기가 없어서 팔리지 않고 비어있는 집들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아파트 단지의 이름을 바꾸어 횡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래미안’ 또는 ‘푸르지오’ 등의 이름이 아주 인기가 좋은데, 그 이름으로 바뀌면 그 즉시로 집집마다 약 3천만원($30,000)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사람의 이름이 바뀌는 경우들이 등장하는데, 예수님이 이름을 바꾸어 준 사람들 중에 시몬 베드로가 있습니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사막’이라는 뜻인데, 예수님이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로 이름을 바꾸어주셨습니다. 왜 바꾸셨을까요? 아마도 그의 성격이 불같아서 사막의 기후처럼 불안정하였기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 변하지 말라.’는 뜻에서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름이 베드로로 바뀐 후에도 여전히 그 성격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를 제자로 삼으셨고 복음을 위하여 크게 쓰임 받는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모습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주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바뀐다면 말입니다.
1. 천국 열쇠 받은 베드로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함으로 인하여 주님으로부터 천국 열쇠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16절). 주님께서는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시고, 그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며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7-19절)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권세였습니다. 이 열쇠를 가지고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까지도 맬 수 있고 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열쇠로 천국 문을 잠글 수도 있고 열 수도 있습니다.
2. 사단이 된 베드로
그러나 그 말씀을 듣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심한 책망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23절) 주님 앞에서 사단이 되었으니, 자신이 받은 그 천국 열쇠로 땅에서 잠근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땅에서 잠그면 하늘에서도 잠긴다고 하였습니다. 열쇠로 잠그면 나오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상태를 ‘무저갱에 가두었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왜 이런 큰 실수를 하게 되었을까요? 본문 21절과 22절에 의하면, 그가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에 매달리면 땅에서 매는 자가 됩니다.
천국의 열쇠 가진 사람은 그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하늘에서 풀리게 될 것이고 이 땅에서도 풀리는 맛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만이 하늘에서도 풀리게 되어 영원한 자유자 즉 천국 시민이 될 것입니다.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소장인 이희대 교수라는 분은 유방암 수술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합니다. 그가 수술한 유방암 환자만도 2,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희대 교수 자신이 암에 걸려서 십여 차례의 수술과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암환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수술하였던 그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고 암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분이 암 환자들을 위하여 ‘전세집 이론’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 속에 암 세포를 갖고 있지만 암 환자와 다른 것은 그 암 세포들이 치명적인 상태로 발전되지 않았다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주장하는 것은 ‘암세포가 말썽부리지 않도록 관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암과 싸워서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의 심령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든지 사단의 편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지니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한 시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생각과 ‘사람의 일’에 대한 생각이 늘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말썽을 부리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일’을 버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만이 그 비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합니까?
첫째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 즉 ‘땅에 매였던 것들’을 천국 열쇠로 푸는 일입니다. 그 때 비로소 천국을 맛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 체험을 하였습니다. 로마서 14잘 8절에서 외치는 것처럼(‘살아도 주를 위하여..죽어도 주를 위하여..’) 그의 삶의 목적이 바뀌었을 때 그는 욕심으로 말미암는 죄와 죄로 말미암는 죽음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기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천국 열쇠로 땅에서 풀기 위해 필요한 수고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고난입니다. 이 수고를 할 때, 이 십자가를 질 때 비로소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 바칠 정도까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오히려 살아납니다.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습니다.(25절)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후에, 무리들이 다 주님을 떠나가자, 주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요한복음 6:67)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 앞에 왔었지만 결국 영생을 잃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었고 제자들은 영생을 성취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 열쇠는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천국사다리를 올라가기를 원한다면 그 열쇠로 땅에서 푸는 자들이 되십시오. ‘사람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찾으십시오! 열심히 찾으십시오! 열심히 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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