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8, 2012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고린도전서 3:1~9) [2007-6-24]



본문 : 고린도전서 3:1~9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성경이 적용될 대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학교로 따지면,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다 똑같은 교재를 사용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보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아이, 갓난아이, 학생, 청년, 또는 어른에 이르기까지 그 신앙의 모습이 다양합니다.
그러면 같은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 각자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각 개인의 결단과 실행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단이 없거나 실행하지 않으면 결코 성숙되어 가지 못할 것입니다.
실패하는 기업경영인(CEO)에게는 8가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1.실행에 약하다. 2.조직원의 헌신을 이끌어 내기보다 과정 자체에 집착한다. 3.제한된 정보에 의존한다. 4.인기에 연연한다. 5.스스로 낮은 수준의 기준에 만족한다. 6.숫자 즉 결과적 현상을 놓친다. 7.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8.후계자의 육성에 실패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은 기업 경영인으로서 성장하지 못하고 퇴보하게 되며,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그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입니까?
기업에 비유한다면, 하나님은 기업을 한 사람의 경영인에게 맡긴 이사장과 같습니다. 신앙인이란 그 기업 즉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이 세상에서의 한 번의 인생을 맡아 운영하는 경영인과 같습니다. 그러면 기업을 맡긴 이사장은 그 경영인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랄까요?

본문 9절은 바울이 경험하고 깨닫게 된
1.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에 하나님을 끌어들이고, 필요할 때에만 하나님을 이용하며, 결국에는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밭'이 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구체적으로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오직 자신이 원하는 열매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밭’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집(건축물)'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사람입니다. 자기 집을 짓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 말씀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행하지 않음으로써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 하나님의 집을 허무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 8절에서 바울 사도는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자신을 따르는 성도들을 향하여 한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3절)

2. 육신에 속한 사람은
육신으로 자라가겠지만 언제까지 자라겠습니까?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지만, 유소년기와 노년기를 빼고 나면, 성숙한 육신으로 무슨 일을 하는 기간이 얼마나 짧고 허망합니까?
1절에서 바울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말씀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3절에서 바울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분쟁을 일삼고 사람을 따라 행한다고 말씀합니다. 힘을 모아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7-8절에서 바울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상급이 없고, 발전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이 되기까지 성장할 수 없습니다.

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신령한 자'라는 말은 '영에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은 영적으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까지 자랍니까?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영원토록 자라갑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성도의 심령 속에는 항상 기쁨과 감격이 끊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분명하게 다르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누가 성령에 속한 사람 될 것입니까? 목사만 성령에 속하면 됩니까?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 안수집사, 권사들만 성령에 속한 사람의 모습이 되면 다 되는 것입니까?
어떤 부자의 아들의 결혼식이 있어 음식을 장만해야 했습니다. 집주인은 그 집에 있는 동물들을 모두 소집하여 의논하면서 동물들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귀한 아들 결혼식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잔치를 베풀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동물들은 입을 모아 "찬성이요, 대찬성이요."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집주인이 "그럼 이 요리의 재료로 거위를 죽이기로 합시다."라고 말하자, 거위는 새파랗게 질려서 소리쳤습니다: "나는 큼직한 알을 낳아서 이 집안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죽이려면 저기 있는 암탉을 잡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암탉은 "무슨 소리요, 나는 아침을 알려 주는 거룩한 직분을 맡고 있소. 저기 시원찮은 양이 있으니 저 녀석을 죽이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양도 소리쳤습니다: "내 털이 주인의 가족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고 있소." 양은 말없이 개를 가리켰습니다.
개도 소리질렀습니다: "나의 은혜를 배신하다니, 도둑을 지키고 여우나 늑대를 쫓는 것이 바로 내가 아니오? 말을 죽이시오."
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멀리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내 덕분이오. 내 잔 등은 앉기도 편하게 생겨 주인에게 봉사하고 있소. 저기 쓸모 없는 소 같은 것과는 질이 다르오."
그러자 소가 한마디하였답니다: "나 없이 농사가 됩니까?"
주님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그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를 해달라고 요청하실 때에는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성령의 소욕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아직도 육신의 소욕만을 따른다면, 주님이 얼마나 실망하시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름만 ‘그리스도인’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되지 맙시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라고 한탄하시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맙시다!
육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참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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