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0:34~39 7/17/2005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굶주려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온 사방에 사랑타령이 많습니다. 유행하는 노래들이 그러하고,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들이 그러합니다.
어떤 교회의 여신도회장이 부동산 투자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땅 사랑 집사’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답니다. 하루는 여신도회에서 헌신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 ‘땅 사랑 집사’는 그 날도 부동산 투기를 위해 아파트를 둘러보다가 예배 시간에 늦게 되었습니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그 집사님이 예배를 인도하면서 ‘자, 우리 다같이 찬송가 109동을 부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가 젊었을 때 여자친구를 사귀었습니다. 오랫동안 교제를 나누던 그 여인은 칸트가 자신에게 청혼해주기만 바라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자신이 먼저 칸트에게 결혼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칸트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소’라고 대답하더니 그날부터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결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그 여인의 집에 찾아가, 마중 나온 그녀의 부모에게 “내가 당신들의 따님과 결혼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라고 하자, “내 딸은 이미 세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었오.”라고 대답하였답니다.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더 사랑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자들만 사랑타령을 합니까?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보니,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사랑타령을 하고 계십니다!
1. 주님께 합당치 않은 사람
37절에서,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시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38절부터 39절에서는 ‘자기 자신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합당하다’는 말은 ‘의미 있다’ 또는 ‘가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께 합당치 않은 사람’은 주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 합당치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천국사다리를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는 주님께 합당한 사람 되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 말은 “나는 내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며, “나는 내 아들이나 내 딸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며 또한 “나는 나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2. 미워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더 나아가 누군가를 미워하라는 말입니까?
본문 34절부터 36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으로 인하여 가족들이 서로 원수 관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원수가 된 그들을 미워해야만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말입니까? 어떤 분들은 그렇게 해석하여, 아직 믿음이 없는 자기 부모들이나 형제들 또는 자녀들을 핍박하고 미워하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이 말씀을 하신 주님은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심지어는 그들을 선대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내어주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은, 다만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라는 데에 강조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결론은 무엇입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원수 관계가 되었다 할지라도,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미워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결코 성립된 수 없다는 뜻입니다.
3. 주님을 더 사랑하려면...
여기에서 주님이 사용하신 ‘사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필로스’인데, 이것은 형제간 또는 동료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상대방 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나를 그에게 맞추어 가며 또한 그에게 유익을 주는 말과 행동을 뜻합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더 사랑하려면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항상 좋은 감정을 갖고 그들의 뜻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며 또한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하기 위하여 주님께 대한 좋은 감정이 깨지거나 주님의 뜻과 달라지거나 주님께 해를 끼치는 언행을 해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더 사랑하려면 육신의 아들이나 딸을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항상 좋은 감정을 갖고 그들의 뜻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며 또한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아들이나 딸을 사랑하기 위하여 주님께 대한 좋은 감정이 깨지거나 주님의 뜻과 달라지거나 주님께 해를 끼치는 언행을 해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더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을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항상 좋은 감정을 갖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하며 또한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주님께 대한 좋은 감정이 깨지거나 주님의 뜻과 달라지거나 주님께 해를 끼치는 언행을 해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의사로서 크게 성공한 A. J. 크로닌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의과대학 학생 시절에 모든 교수들이 칭찬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되자마자 ‘부와 명성이 따르는 위대한 의사가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병원을 개업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병원 운영은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완전히 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던 그에게 ‘재물을 위해 일하지 말고, 나를 위해 그리고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일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린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자, 얼마 되지 않아 병원이 불일듯 일어나게 되었고, 위대한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그 사랑으로 인하여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주님께 대한 그 사랑 때문에 내 목숨까지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성도가 됩시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천국사다리를 올라가게 하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잘되게 하는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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