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민수기 35:15~28
(15)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무릇 그릇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16)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17)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고살한 자니 그 고살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19)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친히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요 (20)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죽이거나 (21)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고살하였음이라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니라 (22)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23)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다 하자 이는 원한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24)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수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25)피를 보수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 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 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26)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27)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28)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유하였을 것임이라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의 산업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그들에게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3개씩 도피성을 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이 도피성은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매우 비생산적인 일입니다. 또한 세계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독특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일을 명령하셨을까요? 그 도피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1. 두 가지 죄인
본문은 죄인들에게 두 가지 부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고의적인 죄인입니다. 죄가 되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행동한 경우입니다.(16-21절) 그러한 죄인들에게 "죄 값을 치루라"고 판결한다면, 누구든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악의 없는 죄인입니다. 그것이 죄가 되는 줄 모르고 또는 실수로 죄를 범하게 된 경우입니다.(22-23절) 그러한 경우에도 죄를 지었기 때문에 "무조건 죽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다면 그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누구든지 어디로 피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억울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도피성을 만들고 그 성으로 피한 자는 살려주어라! 쫓아내지 말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인 것입니다.
폴란드 서부도시 카토비체에서 어떤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가려다 마침 집을 지키던 경비원에게 발각됐습니다. 경비원은 방망이로 도둑의 머리를 세 차례나 강타해 두개골에 금이 가게 하는 중상을 입혔고, 비틀대며 도망치는 도둑을 쫓아갔습니다. 차에 올라탄 도둑이 차를 출발시켰지만 운전석 옆의 창문을 부수고 경비원이 차에 매달렸고 결국 차는 쓰레기더미 속에 쳐박히고 말았습니다. 그 도둑은 자기 휴대전화로 경찰에 연락해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얌전히 체포됐다고 합니다.
도둑질 하다가 들켰지만 차라리 경찰서로 들어가는 것이 그에게는 사는 길이었던 모양입니다. 일단은 경찰서의 보호를 받게 되니까요.
그러나 악의 없이 죄인 된 자들에게 피할 곳이 있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그곳으로 피한 죄인들은 아무 값없이 그 혜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나 그 도피성의 보호는 무조건적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도피성으로 피하였던 그 죄인이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그의 원수가 그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피성에 피해 있는 것은 오직 그 대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만 유효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일찍 죽으면 보호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도피성의 보호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임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성경은 "영원한 도피성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하지 말라"는 명령과 "하라"는 명령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100% 완전하게 준행하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두 가지 죄인 중 어느 한 쪽에 속할 뿐입니다. 하나는 고의적으로 죄인이 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악의 없이 실수로 죄인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악의 없는 죄인도 그 죄로 인하여 죽어야만 한다면 얼마나 절망스럽고 또한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만약에 그러한 억울한 죄인들이 피할 곳이 있다면, 그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있다면,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죄인들에게 최고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어서, 그리로 피하는 자는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로마서 8:2) 그리고 어떤 것도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로마서 8:38-3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죄인 된 인간들에게 영원한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도피성의 혜택을 무조건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던, 도피성의 혜택을 누리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살펴봅시다. 먼저 둘째 조건에, 그 대제사장이 살아있는 동안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히브리서 6:2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도피성은 우리의 영원하고도 완전한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첫째 조건은 도피성 밖으로 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품 밖으로 나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탄의 세력에 붙잡혀서 영원한 죽음을 맛보게 되고,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미 그곳으로부터 도망쳐 도피성으로 피한 경험을 했으면서도 다시 그 성을 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지금 그러한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스스로 의인이 되거나 자신의 죄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랑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원수들의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성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굉장한 천재였지만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는 건망증이 생겨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나이도, 생일도 잊어버렸습니다. 친구나 후배들이 찾아와 인사를 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천재가 일생을 통해 가깝게 지내온 사람들에게조차 "자네 누군가?"하고 물었다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한번은 어떤 이가 하도 답답해서 뉴턴에게 물었답니다. "선생님,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뉴턴은 "두 가지가 있어요"라고 하면서, "첫째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것, 이 두 가지는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 아닙니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깨달았다면 영원한 도피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피하기 바랍니다. 피하였다면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영원토록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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