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7:57~8:3, 9:1~9 (57)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59)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1)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1)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3)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교회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가 죽임을 당할 때 그 현장에는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을 열심히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난 후로 변화되었고,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1. 사울이 변화되기 전에는 이렇게 변화되기 전에 사울은 당대에 최고의 유대교 학자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 될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지식적인 능력에 있어서 뛰어난 유대인이었습니다.(사도행전 22:3) 그리고 스승보다 더한 열정과 열심히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였습니다.(사도행전 5:34-41) 그는 자기 능력으로 세상의 흐름 즉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들이 세워지기 시작되던 분위기를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잔멸하고자 하였고(8장 3절), 위협과 살기가 등등(9장 1절)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의 본성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뜻대로 상대를 바꾸려 하는 자세입니다.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를 자기 생각대로 바꾸려고 합니다. 자녀들의 인생을 자기 뜻대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다른 교우들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교회의 운영이나 계획조차도 자기 생각과 말대로 움직여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불평불만과 원망을 늘어놓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변화되지 않은 그 성도의 믿음이나 능력이나 성경지식 또는 열정과 열심 많을수록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변화되지 않은 사울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를 잔멸하고 성도들을 핍박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주변에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넘어지게 합니다. 사울처럼 위협과 살기가 등등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나 본성과는 정 반대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울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주님을 거역하고 복음을 방해하는 일에 엄청난 공을 새우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가 속한 가정과 교회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2. 그러면 사울은 갑자기 변화되었을까요? 이기적인 인간 본성은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즉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아무 고통이나 손해 없이 변화되기를 갈망합니다. 또는 어떤 강력한 능력자의 기도로, 안수 받음으로 한 순간에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바램은 하나님의 방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3. 사울의 변화의 바탕에는 다메섹의 위대한 질문과 고난의 세월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에게는 상당한 고난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에는 용기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고난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결코 변화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위대한 질문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9장 5절)라는 질문 속에는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사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할 때 비로소 변화와 발전이 가능하게 되며, 진실한 관계가 성립됩니다. 사울의 질문에 대해 주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는 나를 핍박하는 자이다."(9장 4절) 사울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실상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비로소 참 목자를 발견한 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착각 속에서 변화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부모나 자녀의 성공 또는 구원이 자신의 성공 또는 구원인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기발견이 없으면 아무런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사울처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화목하지 못하고 싸움이 잦은 어떤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사가 불만족스럽고 하루하루가 지겨웠습니다. 사소한 일로도 화가 나서, 할 수만 있다면 이 골치 아픈 집을 떠나 세상 끝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한 친구가 우연히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행복해 보였고 미소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집안에 무슨 크게 좋은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야, 전과 똑같지 뭐. 하지만 내가 변했어."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는 온 세상이 그녀에게 지옥이었지만 스스로 변하고 보니 온 세상이 천국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에드워드 모트라는 37세 된 목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열등의식, 반항, 원망이 항상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삶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게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화를 자주 냈습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피곤하게 일은 하지만 그의 주머니는 항상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그는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 존 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 거듭난 도리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거듭난 후에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그의 환경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55세 되던 해에 그는 목사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찬송가 539장으로 지금도 널리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당신은 누구입니까? 주님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자신이 먼저 변하기로 결단합니까? 변화에는 용기, 결단, 인내가 필요하지만, 위대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Saturday, March 17, 2012
당신은 누구십니까? [20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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