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16, 2012

기쁨이 있는 사랑 [2006-8-6]



본문 : 열왕기상 12:8~16
(6)르호보암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7)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9)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11)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 (12)삼일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일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사랑(Agape)에 대해 고린도전서 13장 4-5절은 ‘오래 참음/온유함/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음/자랑하지 않음/교만하지 아니하며/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성내지 아니하며/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고, 이어서 13장 6절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기뻐한다'는 말은 원어로 kairo인데 rejoice라는 뜻이고, '불의(adikia)는 injustice 또는 unrighteousness를, '진리(aletheia)'는 truth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한 자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게 되어 있고, 진리를 기뻐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이 agape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요?
1. 기쁨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쁨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마다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무엇을 기뻐하느냐가 다르겠지요.
전라남도 목포경찰서는 며칠 전에 2만 2,900볼트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매달려 자살소동을 벌인 정모(36^서울)씨를 전기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이날 새벽에 어느 아파트 앞 가게에서 혼자서 맥주를 마시다 초면인 가게주인 김모(57)씨가 외상을 거절하자 갑자기 가로수를 타고14m 높이의 전신주에 올라가 전선을 잡고 20m를 왕복하는 등 전기 공급을 방해한 혐의라고 합니다. 술꾼은 술로 인하여 기쁨을 찾으려고 합니다. 밥은 안 먹어도 술은 끊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쁨에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가능케 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자'였던 솔로몬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기쁨은 최고의 영화를 누리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왕이 된 후에 그는 먼저 화려한 왕궁을 건축하기 위하여 13년,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7년, 도합 20년 동안 백성들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4장에 보면, 엄청난 재물을 소비하였던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결국에는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영화에 대하여 그리고 백성들의 고통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기지셨을까요? 예수님이 그 모습을 보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아버지를 이어서 왕위에 오르게 되자, 백성들이 그 고통을 줄여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솔로몬을 모셨던 노인들이 왕에게 조언하는 말을 보면, 그들의 기쁨은 백성의 짐을 덜어주는 것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의 모습이었습니다.
반면에 새로 왕이 된 르호보암의 기쁨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의 기쁨은 백성들의 평안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의 모습입니까?
또한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소년들의 기쁨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자신들의 친구였던 왕이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짐으로써 그 혜택을 누려보고자 하는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의 모습입니까?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조언 중에 르호보암은 어느 쪽을 선택하였습니까?

2. 불의를 기뻐하는 자
'불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불의를 기뻐하는 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의를 선택하기를 기뻐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돈에 눈이 멀면,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는 모양입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에 태고종 황룡사 절이 있는 모양인데, 정씨 성을 가진 스님이 시체 썩은 물을 엄청나게 귀한 약이라고 속여서 50만원에 여러 환자들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불의의 결과는 미움과 갈등과 분쟁입니다. 그 끝은 죽음입니다. 르호보암이 불의를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나뉘게 되었고, 반역을 일으킨 여로보암을 따라갔습니다. 결국 나라가 둘로 나뉘어, 두 나라가 다 없어지는 날까지 끊임없이 미워하고 싸웠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고 하지만, 이런 모습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3. 진리를 기뻐하는 자
반면에, '진리'는 '하나님의 뜻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기뻐하는 자는 진리를 선택한 것을 기뻐하는 천국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간디가 영국의 압제와 폭력에 저항하는 평화 행진을 조직하고 선두에 섰을 때 영국의 한 라디오 방송 기자가 옆을 따라오며 물었습니다: "당신의 노력은 사실상 성공할 희망이 1%도 안 보이는데 어째서 이런 고생스러운 긴 행진을 하십니까?" 그러자 간디는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반드시 성공할 날이 올 겁니다. 진리가 우리 편인데 진리가 졌다는 역사를 보았습니까?"
진리를 따르고, 진리가 승리할 것을 믿는 것, 말은 쉽지만 내가 그것을 실천하고자 할 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리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순례의 길을 걸어온 한 젊은이가 수도자를 만났습니다. 젊은이는 수도자에게 어떻게 하면 인생의 참된 길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수도자는 젊은이를 연못으로 데리고 가더니 갑자기 물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젊은이는 물에서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수도자는 계속 이 젊은이를 물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젊은이가 허우적거리다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수도자는 그를 끌어 내놓고 물었습니다: "물 속에서 자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가?" "숨 쉬는 것이었습니다." "자네는 진리를 찾기 위해 그렇게 갈급하게 노력해 보았는가? 진리는 그렇게 간절하게 찾는 자만이 얻게 되는 것이라네."
진리를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진리를 발견할 수 없고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만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소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의의 결과는 죽음이지만 진리의 결과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결이 그 진리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Agape)의 열매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불의와 진리를 분명하게 알고 구분합시다. 불의를 미워합시다. 그리고 진리를 선택하기를 기뻐합시다. 진리를 따르고자 하면 불의한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할 지도 모르지만, 그 영원한 진리로 고난을 이겨내는 용기와 인내심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사랑(Agape)을 간직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얘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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