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민수기 16:1~7
(1)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2)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3)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4)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5)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6)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너의 모든 무리는 향로를 취하고 (7)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의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하나님의 사랑(Agape)d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는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오래 참음, 온유함,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그리고 다섯 번째로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교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서 whisio-o인데, ‘풀무’를 뜻하는 whisa에서 파생된 단어이고, 영어로는 puff up 또는 blow up이며, ‘부풀리다. 부풀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주로 ‘교만하다’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남들을 깔보고 경멸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NIV 번역본에서는 proud 즉 ‘잘난 체하는’이라는 의미로, NASB 반역본에서는 arrogant 즉 ‘거만한, 건방진’이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진 사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맹꽁이는 배에 바람을 넣어 소리를 냅니다. 하루는 맹꽁이 아들이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집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습니다. ‘엄마, 엄마, 내가 길을 지나다가 엄청나게 큰 황소를 보았어요!’ 황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맹꽁이 엄마가 자기 배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대답합니다. ‘그 황소란 놈이 이만하더냐?’ ‘아니에요, 그것보다 훨씬 커요!’ ‘아무리 커도 이정도이겠지!’ 맹꽁이 어머니는 배에 바람을 계속 불어 넣으며 아들과 이여기하다가 결국 배가 터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만은 ‘자신은 높이고 남은 낮추는’ 태도 때문에 생깁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사랑(Agape)이 없으므로, 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1. 고라의 사명과 충성
고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였고,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사명과 충성을 참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1절에서, 레위는 야곱의 셋째 아들이었고 그의 후손인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직으로 성별되었으며, 그 직무는 세습적이었습니다.
고핫은 레위의 둘째 아들이며 모세의 조부였는데 그 자손은 레위 족속 중 높은 지위 즉 증거궤와 상과 등대, 단 그리고 성소에서 봉사하는데 쓰는 기구들과 휘장 등을 보관, 운반하는 일을 맡은 자들 그리고 성전에서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는 일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이스할은 ‘그는 빛나다’ 또는 ‘기름’이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고라가 바로 그러한 대단한 집안의 후손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고라는 바로 그 대단한 하나님의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사랑과 헌신으로 인하여 교만해졌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아들들 또는 친척들이 대통령의 권세를 의지하여 여러 가지 비리를 저지르다가 심지어 감옥에 갇히는 일까지 생깁니다. 그러면 그들이 과연 자기 아버지 또는 가까운 친척인 그 대통령을 정말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 받았다는 교인들 중에, 대단한 능력을 행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만해지고 결국 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 고라의 교만
고라가 교만하게 된 원인은 ‘불공정한 평가’에 있었습니다. 모세와 그의 측근들에게도 당연히 흠과 단점이 있었겠지만, 고라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고 모세와 그의 측근들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그들의 교만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는 민족의 분열입니다. 당파싸움과 편 가르기가 계속되었고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하여 악한 방법도 동원시켰을 것입니다. 둘째는 고라당의 파멸입니다. <32-33절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셋째는 애매한 백성들의 피해입니다. <49절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명이었더라’>
한 아버지가 20년 전에 사업에 크게 성공하였을 때 아내와 자식을 버렸습니다. 67세가 된 그 아버지가 얼마 전에 옛 아내와 자식들을 법정에 고소하였습니다. 아버지 거지 꼴이었지만, 고소를 당한 65세의 어머니는 이혼하면서 받았던 땅으로 인하여 수백억대의 재산가가 되었고, 고생하면서 훌륭하게 키운 두 아들이 어머니 곁에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판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더랍니다. “20년 전 이혼할 때 땅을 넘겨준 것은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서 넘겨준 것이므로 무효입니다. 저 사람(부인)은 그 땅 가지고 많은 돈을 모았는데 이제 내가 굶어죽게 생겼다는데 거들떠도 안 봅니다.” 교만한 자의 추한 모습 아닙니까?
3. 교만의 예방
인간의 최고 약점 중에 하나인 이 교만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로 내려오신 그의 삶의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보여야 할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교만을 예방하려면, 첫째로 주님 옆에 나를 세워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겸손하신 주님보다 더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고라당에 합세한 사람들이 그런 자세를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코 모세에게, 하나님께 대적하는 불쌍한 자들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도 천하보다 귀한 구원받을 영혼들인 것입니다. 만약에 고라당 사람들이 그러한 눈으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았다면, 이러한 비참한 일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셋째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선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악을 행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될 것입니다. 고라당 사람들이 그러한 마음을 가졌다면, 스스로 망하고 백성들까지 망하게 하는 일은 꾸미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또한 교회를 사랑합시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이 되지는 맙시다! 주님처럼, 사랑은 풍성하게 넘치면서도 항상 겸손하여 남을 마보다 낫게 여기는 참된 성도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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