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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8:1~6
(1)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5)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하나님의
사랑(Agape)에 대해 고린도전서 13장 4절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사랑은 온유한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세 번째로는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투기’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헬라어 원어에서는
‘zelos’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영어 단어 ‘zeal’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이 단어는 크게 두 가지로 번역이 되는데, 첫째는 ‘열심,
열정’으로 번역됩니다. ‘열심당원 시몬’을 지칭할 때 ‘zelotes(열심당원)’가 그러한 뜻으로 사용된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시기,
질투(envy)’로 번역되는데, ‘투기’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이 두 가지 의미가 한 단어
속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열심과 열정이 없으면 투기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열심과 열정이 잘못되면 그것이 바로 ‘투기’가
되는 것입니다.
‘투기’라는 말은 ‘자기 뜻대로 상대방을 움직이려는 열심’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열심은 좋은 열심이 아니라 악한
열심입니다. 반면에, 선한 열심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열심입니다. 그러한 열심은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열심입니다.
그러므로, 열심은 있으나 내 뜻대로 상대방을 움직이려는 사람에게는 사랑(Agape)이 없고, 열심이 있으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존중하고 유익을 주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입을 사용하고 손과 발을 사용하고 머리를
사용하는데, 결국에는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돈과 시간도 많이 투자하지만, 그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말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열심히 이루려던 일이 벽에
부딪혀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한을 품게 되고 무서운 결과가 이루어집니다.
호주에 사는 28세 된 ‘재니스 워맨호벤’이라는 청년은, 자기
애인이 아기만 좋아하는 것을 보고 질투심이 생겨서, 생후 10개월 된 아기를 집어던져 사망케 한 일이 생겼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여자가 한을 품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한을 품는 시대가 된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열심 자체가 나쁜
것일까요?
1. 본문에서 두 가지 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울과 경건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들이 쉽게
흉내 내지 못할 열정과 열심이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울의 태도는 ‘내 생각대로 결과를 이루자’는 것이었습니다. ‘투기’에
해당되는 태도입니다. 반면에 스데반과 경건한 사람들과 흩어진 사람들과 빌립 그리고 그들을 좇는 무리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결과가 이루어지게 하자’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는 하나님의 참 사랑(Agape)의 열매가 맺히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1:15-17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2. 잘못된 열심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 하고, 홀로 칭찬을 받고자
하며, 자기 고집을 버리지 않고 독선적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그리하여 투기하는 사람이 되고 결국에는 죽음을 부릅니다.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죽음이 임하게 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서양인들이 미국 땅을 차지할 때 무려 7천만 명의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학살하였다고 합니다. “그릇된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열심이다”라는 말을 마음에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2:17 성전 청소 -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시69:9)
그렇다면 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열심을 포기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열심히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7:32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 하나님의 열심은 자기 뜻대로 인간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열심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는 아버지로부터 사명을 받은
아들의 열심의 작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Agape)은 열심과 열정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열심과 열정으로 하지만 생명을 풍성케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그것이 바로 ‘투기하지 않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대통령 만델라는 10대 청소년이었을 때, 남의 집 돼지를 몰래 잡아먹던 비행 청소년이었다고 합니다. 돼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그 때 만델라는 열심히 죽음의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하였던 그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그
열심히 자기 국민들을 위해 일할 때,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자유국가로 만드는 영웅, 수많은 생명을 살려내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열심과 열정은 있게 합시다! 그러나 그 열심과 열정이 투기로 변하지는 않게
합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과 열정으로 하되,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합시다!
죽음을 위한
열심과 열정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열심과 열정으로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하게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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