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잠언 6:12~24 9/4/2005
(12)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 (13)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 (14)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그러므로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하리라 (16)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17)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20)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21)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22)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23)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24)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집안이 있습니다. 흥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는 망하는 집안이 있고, 처음에는 망한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는 흥하는 집안이 있습니다.
1. 망하는 집은
본문 12절 말씀처럼 불량하고 악한 자녀들을 배출하는 집안입니다. 그런 집안은 흥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재앙이 갑자기 임하여 결국에는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15절)
16절 이하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망하지 않고 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갑자기 임하여 영원히 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이 태어나던 때에 ‘엘리’라는 제사장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홈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최고의 권세를 누렸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고로 흥하는 집안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준비하던 제물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먼저 차지하는 불량배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비행을 알면서도 그들의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은 말로만 책망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사무엘상 2장 17절은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블레셋 족속이 쳐들어오자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고, 그 소식과 함께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충격을 받아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산통으로 죽었습니다. 집안이 완전히 망해버린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해진 사울 왕은 자기 이름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자기 멋대로 제사를 드리는 등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0-1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의 집안도 결국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2. 반면에, 흥하는 집은
20절 말씀처럼 아비의 명령을 지키고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인도함과 보호함을 받는 집입니다. 그러한 집안은 23절 말씀처럼 빛 가운데 행함으로 생명의 길로 나가는 집입니다.
사울 왕의 뒤를 이은 다윗의 집은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에는 완전히 망하는 집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끝까지 하나님의 법을 지키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주시고 결국에는 통일왕국을 이룩하는 위대한 왕의 집안이 되었으며 메시야가 그의 혈통 속에서 세상에 오시는 큰 광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집이 하나님의 큰 복을 받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혀서 찬송을 부르자 큰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의 문이 열렸습니다. 죄수들이 도망간 줄로 여긴 간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자 바울이 그를 설득하고 결국에는 그 간수뿐만 아니라 그의 집안이 다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간수의 결단도 훌륭하지만, 그의 결단에 동조한 집안 전체가 참으로 존경받을만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사도행전 16:29-34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 흥하는 집에는 아비의 명령과 어미의 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아비의 명령’에서 ‘명령’은 영어성경에서 commandments로 번역된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에 입각한 어떤 계명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정 안에 하나님 명령의 대리자가 있게 될 때 그 가정이 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명령이 참된 의미를 가지려면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그 명령을 내릴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즉, 그 가정의 아버지가 하나님 편에 분명히 서있고, 주님을 닮아가고 있을 때 그의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의 권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명령을 내리는 사람만 있다고 해서 그 명령이 의미를 갖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명령을 받는 가족이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하고 순종의 자세로 실천하는 가족이 있을 때 비로소 아비의 명령이 있는 가정이 되고 흥하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신문에서 요즈음 “울고싶은 남자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S병원 홍보팀장으로 일하던 박씨 성을 가진 47세의 어떤 가장이 명예 퇴직을 당하고 퇴직금 1억 2천만원을 받았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유학보내자고 주장하고 자녀들도 당연한 것 아니냐는 태도를 보이더랍니다.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권리를 찾는 사람들만 있고 의무는 전혀 무시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이 살아있는 가정이 아니라 아내와 자녀의 명령이 살아있는 집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어미의 법’에서 ‘법’이라는 말을 영어성경 KJV에서는 ‘the law’로 번역하고, NASV와 NIV에서는 teaching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의미적으로 보면, 가정 안에 하나님 명령의 실행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법’이란 명령의 실행을 위한 테두리와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가정 안에서의 어머니의 역할이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가르침’이란 명령의 실행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바른 습관을 형성하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나무를 곧게 자라게 하려면 어린 나무일 때 방향을 잘 잡아주어야 합니다. 한국에는 “세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5살까지는 어머니가 교육의 책임을 지고, 5살 이후부터 아들 교육을 아버지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 유대인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명령을 교회가 순종하고 실행할 때 교회가 흥하게 됩니다. 또한 이 진리를 배우고 실천할 때 흥하는 집안이 됩니다. 2005년 가족수련회에 참여하신 성도 여러분, 아비의 역할이 튼튼하고 어미의 역할이 왕성한 교회와 가정을 이룩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읍시다! 할렐루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