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5, 2012

천국사다리(26) - “안식일에 옳은 일” [200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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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2:9~13,30~35     8/21/2005
(9)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10)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30)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34)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안식일’이란 원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안식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사랑하심 등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주일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이 안식일처럼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를 송사하려는 자들이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성도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본분이므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타가 공인한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이 기준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3절에 하나님께서 6일간 일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을 토대로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복잡한 규율을 제정하고 철저하게 지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로들의 전통 또는 유전’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떤 분들은 ‘주일날에는 물건을 사면 안 된다’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주일날에는 TV를 보면 안 되고 거룩하게 보내야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됩니까?
오늘 본문 12절에서, 안식일에 대한 주님의 선언은 ‘선을 행하는 것이 기준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까? 예배를 잘 드리면 됩니까? 아니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까?

1. 30절에 의하면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선행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8-19절에서,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할 때 예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주님이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있으면 아버지 편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선한 것입니다.
30절에서도 ‘주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주님께 대적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과 함께 있다는 증거 또는 표징이 무엇입니까? 그저 말로 그렇게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까? 인간이 아무리 큰 소리로 그렇다고 외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2. 주님과 함께 있다는 증거는 ‘주님과 함께 모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신실한 마음으로 함께 하면 그 사람은 분명한 ‘크리스찬’입니다. 크리스찬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닮았다(Christ-like)’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에서 주님은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26절에서는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으는 것이 주님이 하신 일이고 또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본문 30절에서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고 함께 모으는 사람은
3. 마음에 쌓은 선을 말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말’이란 단순히 음성으로서의 말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것이 표현된 결과라는 의미입니다.
‘선한 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 속에 있는 선이 표현된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살아있는 나무에 유익한 과실이 맺힌 것과 같습니다. 살아있는 뿌리가 작용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선이 표현되면 보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또한 선을 말하거나 행하는 사람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감추고 꾸며서 표현된 선한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죽은 나무에 과실을 달아맨 것과 같습니다. 뿌리가 죽어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억지로 그렇게 보이게 할 뿐입니다. 이렇게 선한 말이나 선한 행동을 하려고 하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점점 더 많은 거짓말로 꾸며대게 됩니다.
거의 똑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로마 황제 네로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최고의 권세를 누리면서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살았습니다.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 1마일이 넘었고,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으며 천정에서는 특별한 샤워장치가 되어 있어서 항상 향수가 이슬처럼 뿌려졌다고 합니다. 그가 한 번 출타할 때에는 적어도 1,000명의 군사들이 동원되었고 그가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허무와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자살해 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자기 발로 로마에 들어갔다가 붙잡혀 죽었으니 자살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세상적으로 볼 때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도망 다니고 매를 맞아 죽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천국소유자로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면 첫째로 마음 속에서 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가고 말씀과 기도로 악한 습성을 발견하고 버려야 합니다. 둘째로 마음 속에 선을 쌓아야 합니다. 사랑과 공의를 선천함으로써 주님 편에 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전도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셋째로 선이 쌓이는 만큼 표현해야 합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선을 쌓는 것보다 더 많이 표현하면 실수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사다리는 하나님께 선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옳은 일을 할 때 선한 사람이 됩니다. 억지로 꾸며서 선을 베풀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선한 사람이 되어 가십시오! 그러면 자동적으로 그리고 쉽게 선한 말과 행위가 여러분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가 풍성하게 맺힐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국사다리를 계속 올라가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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