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애굽기 14:8~16 11/7/2004
(8)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데 미치니라 (10)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16)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어려운 환경들에 부딪힐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 방향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잘 해결해 가겠지만,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점점 더 문제가 복잡해지고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두 친구가 매우 추운 겨울 날 눈보라 속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길 가에 이상한 물체가 있어서 가까이 가 보니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곧 얼어 죽을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한 친구는 쓰러진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데리고 가자고 하였지만, 다른 친구는 ‘우리가 저 사람을 데리고 가면 우리도 지쳐서 같이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혼자 길을 떠나겠다’고 하고 가버렸습니다. 혼자 남은 친구는 쓰러진 사람을 등에 업고 걸어가는데 얼마나 힘드는지 그 추위에도 등에 땀이 흐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 거의 도착하였을 때,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먼저 떠난 친구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던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에는 혼자 간 친구가 훨씬 더 바른 판단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책은 되지 못하였습니다. 문제의 해결책이 세상의 상식과는 매우 다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A. 바로의 군대와 홍해
오늘 본문에 보면,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죽이려고 쫓아왔고, 바로 눈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심각한 위기였습니다.
B. 지팡이를 내밀었더니..
그 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밟고 광야로 나갔지만, 모세가 지팡이를 거두자 뒤따라오던 바로의 군사들은 다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심각하였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홍해가 갈라지는 이 기적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모세의 지팡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흔히들 모세를 ‘능력의 몽 모세’라고 이야기 하는데, 모세가 자신의 능력으로 홍해를 가른 것이 아닙니다. 아론이 말을 유창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하지만, 아론의 언변이 홍해를 가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C. 모세의 생각에는...
출애굽기 4장장에 보면, 모세는 자신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변명하였습니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니, 나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계속 변명하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말을 잘 하는 모세의 형 아론으로 하여금 함께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까? 아론의 유창한 언변이었습니까 아니면 모세의 지팡이였습니까?
C'. 오늘날 성도의 생각에는...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에도 ‘나는 능력이 없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변명하면서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환경에 지배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고,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실패자들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4장 20절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홍해를 가른 것은 모세의 지팡이였다는 사실을! 인간 모세의 능력이 아니었고, 아론의 말재주도 아니었습니다!
A'. 오늘날 바로의 군대와 홍해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 앞을 가로막는 홍해가 있습니다. 뒤에서 방해하는 바로의 군사들이 있습니다.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한된 환경들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패한 과거로 인한 분노 때문에 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 때문에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모세의 지팡이를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B'.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내밀라!
모세의 지팡이의 능력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저 막대기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부어주시면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시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저 무능한 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은 16장 24절에 보니 주님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이 곧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그 시대에 오직 모세에게만 있었지만, 오늘날 이 복음시대에 성도에게 주시는 능력은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이름’이란 무엇입니까? 그저 말로 부르는 이름입니까?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이란 예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행동을 의미하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는 누구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지팡이를 사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본받게 하고 주님의 제자들을 키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 위대한 신앙인들이 되었습니다.
그 능력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도 써먹지 못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삶에 있어서는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무능력한 삶을 살아갑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 때 홍해가 갈라졌던 것처럼, 성도들이 기도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만 있지 말고 사용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바로의 군대와 홍해가 무엇인지를 먼저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홍해를 가른 것은 모세의 지팡이였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지팡이가 여러분 손에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능력의 지팡이를 내미십시오! 사용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막혔던 길이 열리고 장애물이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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