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2, 2012

“고난에 대한 우리의 입장” (12/21/2003)



본문 : 욥기 42:1~11
(1)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2)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3)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7)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8)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9)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10)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I. 고난에 대한 두 가지 해석
고난받는 대상에는 예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순조롭게 성공한 사람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나름대로 고난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성공의 비결에 대해, “포기하고싶은 막다른 골목에서 한 걸음 더 걸어갔을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을 당했을 때 좌절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히려 성공의 계기로 삼습니다. 고난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인생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하나는, "고난은 나쁘다"는 해석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복 사상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복을 받으면 좋은 것이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개념은, “고난은 죄의 결과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고난은 하나님의 저주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욥이 고난을 받게 되었을 때, 그의 친구들이 욥에게 보인 태도가 그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난은 유익하다"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집을 떠나 고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등 해를 입히고 일부러 고통스러운 환경을 만듦으로써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옛 어른들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고난이라는 것이 정말로 나쁜 것입니까? 아니면 좋은 것입니까까?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모든 인간,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예외 없이 겪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확실한 대답을 얻고싶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질문하여 대답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에 대한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인 욥기를 통해 깨닫게 되기 바랍니다.

II. 자녀의 고난에 대한 아버지의 심정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말은 쉽지만,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한 가지 힌트는, 하나님은 우리가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최고의 바램은 그 자녀가 성숙해지고, 성공하여,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1)만약에 자기 자녀가 고난받지 않고도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부모의 마음이 가장 기쁠 것입니다. 자기 자녀고 고난 당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한국에서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고생할 자녀들을 위해 그 고난을 피하도록 미리미리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내는 부모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2)그러나 만약에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고난을 통해서라도 자녀가 더 잘 되기를 원하는 것이 또한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모든 남자들이 군대를 가야 하는데, 자기 아들이 성장하여 군대에 가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생을 잘 견디어내면 여러 가지로 성숙된 것으로 인하여 대견스럽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그와 같으실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고도 하나님 향한 성숙이 이루어지고 성공하여 영원한 행복 즉 영생을 누린다면 참으로 기뻐하시겠지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고난을 통해서라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의 고난이 고난으로 끝난다면 본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불행이요, 아버지께는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드릴 것입니다. 시편119:71에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진리를 더 깨닫게 되는 것, 그것만이 고난의 의미요 유익인 것입니다.
구도자예배로 유명한 윌로우크릭 교회에서는 매주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결단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 가지 방법들을 연구하여 실행하여도 별로 효과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지난 9/11 사태 이후에는 엄청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저 “당신의 미래는 확실합니까? 당신의 내일은 안전합니까?”라는 말 한마디면, 많은 미국 사람들이 손을 들고 결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실제적인 고난에 당면할 때, 하나님 아버지를 먼저 생각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고난으로 말미암는 큰 유익이 반드시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III. 그러면, 고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어떠해야 되겠습니까?
일부러 고난을 찾아다니지는 맙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1)욥이 당한 것과 같은 고난에 여러분이 직접 처하게 된다면, “이 고난을 통해 어떻게 더 하나님께로 갈 것인가?”를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고난을 이겨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간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공급하실 것입니다.
(2)여러분의 주변에 욥처럼 고난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당하는 고난을 판단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살 뿐입니다. 그가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다가감으로써<5절>- 욥은 갑절의 복을 얻게 되었고, 친구들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었습니다.<10-11절>
여러분이 욥처럼 고난의 주인공이 될 때, 자신에게 더 가까이 오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심정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를 향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10,11절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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