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2, 2012

“에덴을 회복하라” (11/17/2002)

본문 : 창세기 2:8-17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12)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14)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I. 서론
지난 10월 한 달 내내 워싱턴 D.C. 일대에서는 연쇄 저격범으로 인하여 온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다행히도 41세의 모하메드라는 어른과 말보라는 17세 청년이 범인으로 잡히기는 하였지만,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일은, 이번 저격 사건은 그러한 살인 대상자를 아무 목적 없이 선택하였다는 점입니다.
살인을 당한 사람들은 그 살인범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정말로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희생자들 중에는, 아침에 학교에 들어가다가 총을 맞은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흉악할 수가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온 몸이 오싹할 정도로 무섭습니다.
아주 악하고 못된 사람을 표현할 때, 우리는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동물들이 생각을 하고 말을 할 줄 안다면, 오히려 “사람보다 못한 짐승”이라는 말을 쓸 것이라고요.
동물들 사이에도 싸움이 있고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이 있지만, 적어도 동물들은 아무 이유 없이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배를 채우기 위하여 또는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는 경우는 있지만, 아무 목적 없이 심심풀이로 또는 재미로 자기 동료를 죽이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보다는 “인간보다 못한 동물”이라는 말이 더 치욕스러운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날 우리의 주변에 일어나는 이러한 끔찍한 현상들을 보면서, 저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사람들끼리 서로 살인하는 일이 인류의 조상 아담의 직계 후손인 가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선한 존재로 인간을 지으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축복인 자유의지의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죄의 자녀로 태어나기 때문에 항상 죄 지을 생각을 하고, 이 생각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가인처럼 그리고 무하마드와 말보처럼 끔찍한 살인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아무 소망 없이 살아가야 합니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그들이 마땅히 했어야 할 일, 그의 자손들이 감당했어야 할 사명은 바로 그 에덴 동산을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하였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던 것 아닙니까?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첫째 아담의 실수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임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아담과 그의 후손이 실패하였다 하더라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의 제자들은 에덴 동산을 회복시켰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하나님이 기다리셨지만, 아직도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러한 죄악에 물든 끔찍한 현상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나 혼자서 건강하고 나 혼자서 배부르게 살면 그만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하여 죄악이 아니라 진리가 근본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루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세상에서 에덴 동산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에덴 동산을 어떻게 회복합니까? 에덴 동산에 존재하였던 것들을 우리의 삶 속에 다시 존재하게 하면 됩니다.

II. 본론
1. 생명나무가 있게 하라.
첫째로, 에덴 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생명 나무가 없으면 에덴 동산이 아닙니다. 생명나무에는 생명을 주는 열매가 열립니다. 에덴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마음껏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이 없고 싸움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왜 욕심이 생기고, 왜 죄를 범하게 됩니까? 마음껏 따 먹을 수 있는, 그리하여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기보다는 생명을 빼앗아서 자기 배를 채우려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생각으로 죽이고, 말로 죽이고, 심지어는 행동으로까지 하나님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5장 13절과 14절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각자의 사명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하고 살기 힘드느냐?”고 원망하고 한탄하면서, 세상의 사람들과 똑같이 그렇게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겠습니까?
에덴 동산을 회복하려면, 먼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생명나무가 자라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와서 따먹고,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와서 따 먹을 수 있는 풍성한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 안에 생명나무가 자라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생명을 풍성하게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기업과 직장 그리고 우리 교회가 생명나무가 되어 그 안에 속한 자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게 하라.
둘째로, 에덴 동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 나무가 없어도, 그곳은 에덴 동산이 될 수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법칙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존재하고 또한 그것이 지켜지면 그곳은 에덴 동산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법칙이 없든지 또는 있기는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곳은 에덴 동산이 아닙니다. 생명 대신에 죽음이 주인 노릇 하는 지옥과 같은 곳이 되어버립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대충대충 쉽게 살려고 합니다. 분명한 원칙 없이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나라와 정부는 권세자들과 부자들을 위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세금을 더 많이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에덴이 회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완전하고 영원한 법칙, 하나님의 참된 진리로 확실한 기둥을 세우지 않으면 에덴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먼저 그 진리의 기둥을 세우십시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십시오. 가정 안에 그 기둥이 있어야만 자녀들이 살아납니다. 교회가 의의 길로 나아가야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3. 네 강물이 흐르게 하라.
넷째로, 에덴에는 네 개의 강이 있었고, 그 물이 흘러서 먼저 에덴 동산을 적시고 온 땅에 퍼졌습니다. 그 물은 흘러나가는 물이었습니다.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고여있으면 반드시 썩게 되어 있습니다. 썩으면 생명을 죽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왜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수,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 물붓듯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세상 밖으로 흘려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부터 47절에 보면,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 하나님 나라를 맛보았던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면서 자기들끼리만 그 은혜를 나누고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싫어하였던 것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저 썩어져가는 세상으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고 힘든 일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이 흘러나가야만 에덴 동산도 영원한 생명의 동산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먼저 여러분 심령 속에 에덴 동산을 회복시키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가정이 에덴 동산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도 힘이 넘치거든 여러분의 가까운 이웃이 에덴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하면 이 세상을 능히 구원하는 주님의 군사들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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