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7:1~14 4/17/2005
(1)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될수록 쉬운 길로 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다른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어느 선교사님이 간증하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여 약속된 시간 안에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데, 안내하기로 약속된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안내자 없이 그리고 지도 한 장 없이 길을 떠났는데, 가다 보니 길이 갈라지더랍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는 14절 말씀이 생각났답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기에 힘들고 어려운 길 쪽으로 갔고, 이렇게 적어도 20번이 넘게 선택하며 길을 갔는데, 놀랍게도 약속시간보다 일찍 목적지에 도착하였답니다. 깜짝 놀라는 현지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길이 그 마을로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하더랍니다.
13절과 14절에 보면, 넓은 길과 넓은 문이 있고 협착한 길과 좁은 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좁은 길과 좁은 문으로 가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일까요? 그리고 이 두 가지 길 중에 당신은 어느 쪽 길을 선택해 가시겠습니까?
1. 넓은 길과 문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 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앞에 있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절과 2절은 형제를 비판하고 헤아리는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비판이란 자기 기준대로 상대방을 정죄하는 것이고, 헤아린다는 것은 자기 기준에 맞추어 측정한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또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정죄함으로써 자신은 상대적인 성취감을 누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쉬운 일입니다.
3절부터 5절은 형제의 작은 단점을 들춰내는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자신의 단점이나 자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상대방의 단점을 크게 확대시킴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을 누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쉬운 일입니다.
6절은 받지 못할 자에게 진리를 던져주는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것은 거룩하고 고귀한 진리를 경시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 진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상대방이 발전되는 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자신이 무언가를 했다는 자족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결과는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형제를 비판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비판을 받고 헤아림을 받게 되고,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눈에 들보가 있게 되며, 거룩한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던져주는 자는 밟힘을 당하고 찢김을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자기중심적 기준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의 사정이나 입장은 전혀 무시하며 결국에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태도로 살아가며, 그것은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남을 비판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형제의 작은 단점을 들추어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큰 단점부터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들로 하여금 거룩한 진리를 스스로 찾도록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하기를 싫어하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좁은 길과 문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2. 좁은 문은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적습니다. 본문 7절과 8절은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구하는 자세입니다. 높은 위치에서 자기 멋대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며 명령하는 자세가 아니라 상대방 입장을 면밀하게 살피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둘째는 찾아 나서는 자세입니다. 상대방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거나 저절로 되기를 기다리는 자세가 아니라 자신의 수고와 노력을 투자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의미합니다.
셋째는 두드리는 자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는데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거나, 조금 노력하다가 쉽게 포기해버리는 자세가 아니라, 응답될 때까지 끈질기게 매달리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자기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갖게 됩니다. 끊임없이 천국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님 뜻을 성취하는 기쁨 즉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남의 단점을 찾기 전에 자기 단점부터 발견하며 아무 생각 없이 진리를 던져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 진리를 찾도록 도와줌으로써 얻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중국 선교사로 유명한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서 ‘선교사님, 내가 신자 되는 데 몇 년이나 걸리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램프에 얼마동안 불을 붙여야 밝아집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그야 불을 붙이는 순간이지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당신이 신자가 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에 불을 붙이는 순간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천국시민이 되어 천국 사다리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기쁨을 맛보기까지 몇 년이나 거릴까요?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좁은 길’을 걸어가기로 선택하는 순간부터입니다!
3.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응답을 받습니다.(8절) 둘째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9-11절) 셋째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14절)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앞에는 넓고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 너머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길과, 좁고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 저편에는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는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으로 들어가겠습니까?
형제를 비판하고 단점을 들추어내며 진리를 아무 생각 없이 던져주는 쉬운 길로 가다가 멸망당하는 대신, 어렵고 힘들기는 하지만 날마다 하나님께 구하고 찾아다니고 두들김으로써 영생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천국 사다리 올라가는 기쁨을 맛보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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