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6:1-10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I. 서론
우리 진리교회는 분명한 목적과
비젼을 갖고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교회의 교인은 당연히 이 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거기에 한 마음으로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창립
2주년에 즈음하여, 우리 모두가 진리 교회의 목적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진리교회의 목적을 주제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새로 부임해 왔습니다. 그 목사님은 많은 준비를 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진지하게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나이가 지긋한 한 교인이 다가와 과거의 교회 역사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목사님 그래도 옛날에는 위대한
설교가들이 있었지 않습니까?”라고 은근히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 목사님은, “아무렴요, 옛날에는 위대한 교인들도 있었지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의 뜻이 인간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데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주시리라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할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게 해답을
주셨습니다.
II. 본론
1. 아버지의 뜻 - 교회의 목적
우리의 하나님은 인격의 근원이시고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 즉 이루고자 하는 뜻을 갖고 역사 하십니다. 이 땅의 교회 역시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셨다면, 그 속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첫 번째
목적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은 자 중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이 우주가 생성되기도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우주를 지으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졌는데, 그 뜻이 이 물질세계 속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2.
“이루어지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 속에는 몇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그 기도 내용에 대한 완전한 동의입니다. 그 일이
옳은 일이고 또한 완전한 진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가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의 뜻 즉 진리가
무엇인지를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연구하겠다는 결심이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는 했는데, 이루어져야 할 그 일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또한 알고자 하는 자세도 되어 있지 않다면, 그 기도는 헛된 기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둘째는,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는 하였는데, 그것이 이루어질지 의심하고 있다면, 그 기도는 거짓된 기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루어질 그 일에 내가 완전하게 의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셋째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에 내가 최선을 다하여 동참하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내가
실제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만약에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고 나서, 그 일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에는 동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치, 육신의 부모님에게 “제가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나서, 부모님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부모님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조국이 통일될 줄로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고 나서,
조국과 관련되는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일을 3. 이루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의 앞부분에 보면, 첫째로 의를 행할 것과, 둘째로 구제할 것과 셋째로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의를 행하고 구제에 동참하고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두 번째 및 세 번째 목적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든지 구제하든지 기도하든지, 우리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 일들을
한다면, 인간의 방법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으로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도 임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하나님의 방법은 첫째로, 1) 은밀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절과 4절과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말고 숨어서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요 또한 법칙입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했더라도, 아무리 거창한 일을 했더라도, 그리고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게 나타났다 하더라도, 만일 자기 이름을 드러내면서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세상에서 보상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는 이미 상관이 없는 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해야 할 이유가 다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밀하게 행해진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세상으로부터 받지 못한 보상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왕이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하고 신하들을 보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신하들이 백성들에게 가서 왕의 이름으로 하기보다 자기 이름으로 자비를 베풀고 백성들의
환심을 샀다면, 왕의 뜻이 어떻게 되겠으며, 또한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은밀한”이라는 말은 “숨긴다, 감춘다”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오히려 자기 이름을 감추시고 숨기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기 위해 은밀한 중에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진리교회는 앞으로 선교와 구제와 봉사를 실천하게 될 때 은밀한 중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둘째로, 2) 가치 기준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양적으로만
따지려고 합니다. 7절에 보면, 이방인들 즉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도 양적으로 많이 해야만 하나님이 들으시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양적인 것보다 질적인 것에 있습니다. 외모보다는 중심을 보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만약에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기보다 여전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양적인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신다면, 그 기준에 도달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천국을 그 종들과 회계하려하던 임금에게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은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무조건 그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습니다. 양적인 기준이 아니라 질적인 기준으로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탕감 받은 그 종은 여전히
양적인 기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들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면서 혹독하게 다룹니다. 그 때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 그
종에게 엄하게 벌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진리교회는 세상의 가치 기준, 양적으로만 판단하려는 기준을 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것을 버리지 못하면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우리 자신은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수결의
원칙보다는 하나님의 원칙을 앞세우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실 되고 신실한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셋째로, 3) 저희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바로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방법보다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인간적인 방법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외칩니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저 제상이 오히려
화려하고 웅장하게 보입니다. 우리 자신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세상은 썩어져서 없어질 세상이요 오직 하나님
나라만이 영원토록 존재하는 참된 세상입니다. 참된 것이 헛된 것을 닮아간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겠습니까?
본문 8절에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무엇을 구하기도 전에,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지 없어도 되는지를 이미 알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이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헛된 것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할 바를 실천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말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만 한다고 해서 우리의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구제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천국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또한 우리
교회가 이루어진 목적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은밀하게 하는 것입니다. 양적으로만 따지는 세상의
기준으로가 아니라 질적으로 따지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본받기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본받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감으로써 놀라운 축복이 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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