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사랑 편지형식으로 보내 ‘맞춤형’ 선정
웃옷을 걷어 올려 배를 보여준다. 명치끝에서 배꼽 아래까지 세로로 길게 난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배를 30cm 잘라 위를 전부 들어냈어요. 식도와 소장을 연결해 살고 있습니다.” 듣는 사람은 눈물이 나려 하는데 신준범(40·인천 남동구 수선동)씨는 남의 얘기하듯 웃었다.
2004년 9월 14일이었다. 대학 교직원인 신씨는 직장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쓰러진 것만 기억난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는 보호자를 찾았다. 위암이라는 진단이었다. 술 담배도 하지 않았고, 매년 내시경 검사도 했었다. 3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찾아온 날벼락 같은 선고였다.
“저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우리나라에서 위암 수술을 제일 잘한다는 종합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어요. 보름 만에 수술한 것도 빠르게 한 거고요. 원래 오후에 수술 일정이 잡혔는데 오전 첫 수술로 변경됐어요. 의사들이 가장 맑은 정신일 때가 첫 수술이래요. 같은 날 수술 받은 환자 중에는 돌아가신 분도 있었어요. 하느님이 저와 함께 하신 것 같아요.”
웃옷을 걷어 올려 배를 보여준다. 명치끝에서 배꼽 아래까지 세로로 길게 난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배를 30cm 잘라 위를 전부 들어냈어요. 식도와 소장을 연결해 살고 있습니다.” 듣는 사람은 눈물이 나려 하는데 신준범(40·인천 남동구 수선동)씨는 남의 얘기하듯 웃었다.
2004년 9월 14일이었다. 대학 교직원인 신씨는 직장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쓰러진 것만 기억난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는 보호자를 찾았다. 위암이라는 진단이었다. 술 담배도 하지 않았고, 매년 내시경 검사도 했었다. 3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찾아온 날벼락 같은 선고였다.
“저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우리나라에서 위암 수술을 제일 잘한다는 종합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어요. 보름 만에 수술한 것도 빠르게 한 거고요. 원래 오후에 수술 일정이 잡혔는데 오전 첫 수술로 변경됐어요. 의사들이 가장 맑은 정신일 때가 첫 수술이래요. 같은 날 수술 받은 환자 중에는 돌아가신 분도 있었어요. 하느님이 저와 함께 하신 것 같아요.”
고난이 그를 깊고 크게 했을까. 그는 마치 철학자 같았다. 고통을 원망하는 빛은 전혀 없었다. “그 동안 이기적이고 독불장군 식으로 살아왔는데 가족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는 친구 만나느라, 직장일 하느라 바쁘잖아요. 사실은 가족들과 돈독하게 보내는데 바빠야 하는데 말이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산책도 했어요.”
신 씨는 ‘거실을 서재로’ 홈페이지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맞춤형(100만원 상당 서가와 책 50권)에 선정됐다. “사랑하는 태원이, 평원이에게. 갑자기 아빠가 쓰러져서 너희들과 맘껏 놀아주지 못하고 미안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약속한 아빠와의 전국여행은 아빠가 더 건강해지면 재미있게 해보자꾸나.” “아내에게. 아이들 독서 지도에 혼자 고민하는 당신을 보며 남편으로서 그 고민을 함께 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소. 혹시라도 내가 걱정하여 병을 악화시킬까봐 전전긍긍하는 당신의 그 넓고 깊은 사랑에 난 늘 빚만 남기네….”
신 씨는 요즘 진밥과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으로 하루 다섯 끼를 조금씩 먹는다. “예전에는 숨 쉬는 게 당연하듯 먹는 것도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죠. 요즘은 먹는 게 너무 고맙고 즐거워요. 한 끼 한 끼 먹을 때마다 ‘이건 복이다’ 생각해요.” 그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물론 걱정은 있다. 그는 “위암은 5년간 재발이 없어야 완치된 것으로 보는데,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서 진료 받을 때마다 심판대에 오르는 기분입니다” 했다.
지난 주말 오후 늦게 신 씨 집에 서가가 시공됐다. 미리 잰 거실 벽면의 치수에 따라 재단한 책장을 조립해 한 쪽 벽면을 모두 서가로 만들었다. 신씨는 “이제 아이들 책을 많이 사서 채울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신 씨는 두 아들 태원(11)과 평원(10)이를 돌아보며 “아빠가 완치되면 같이 여행가자~”고 말했다. “응, 미국으로!” 대학을 하버드대로 가고 싶다는 태원이가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선일보 2007.05.22]
신 씨는 ‘거실을 서재로’ 홈페이지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맞춤형(100만원 상당 서가와 책 50권)에 선정됐다. “사랑하는 태원이, 평원이에게. 갑자기 아빠가 쓰러져서 너희들과 맘껏 놀아주지 못하고 미안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약속한 아빠와의 전국여행은 아빠가 더 건강해지면 재미있게 해보자꾸나.” “아내에게. 아이들 독서 지도에 혼자 고민하는 당신을 보며 남편으로서 그 고민을 함께 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소. 혹시라도 내가 걱정하여 병을 악화시킬까봐 전전긍긍하는 당신의 그 넓고 깊은 사랑에 난 늘 빚만 남기네….”
신 씨는 요즘 진밥과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으로 하루 다섯 끼를 조금씩 먹는다. “예전에는 숨 쉬는 게 당연하듯 먹는 것도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죠. 요즘은 먹는 게 너무 고맙고 즐거워요. 한 끼 한 끼 먹을 때마다 ‘이건 복이다’ 생각해요.” 그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물론 걱정은 있다. 그는 “위암은 5년간 재발이 없어야 완치된 것으로 보는데,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서 진료 받을 때마다 심판대에 오르는 기분입니다” 했다.
지난 주말 오후 늦게 신 씨 집에 서가가 시공됐다. 미리 잰 거실 벽면의 치수에 따라 재단한 책장을 조립해 한 쪽 벽면을 모두 서가로 만들었다. 신씨는 “이제 아이들 책을 많이 사서 채울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신 씨는 두 아들 태원(11)과 평원(10)이를 돌아보며 “아빠가 완치되면 같이 여행가자~”고 말했다. “응, 미국으로!” 대학을 하버드대로 가고 싶다는 태원이가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선일보 200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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