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순회를 하다보면 70이 넘은 노인분이 폐휴지가 가득한 손수레를 하루종일 끄십니다. 저녁 때 팔면 3,000∼4,000원을 벌죠. 어려운 분들을 보면 저의 처지는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행복한 거죠”
겉보기엔 일반인 같지만 사실 그는 두 다리를 잃었다. 2003년 영등포역에서 당시 아이가 철로에 빠졌고, 정신을 차린 뒤는 이미 사고처리가 끝난 상황이었다. 그 후, 무려 7번의 수술과 재활치료를 거듭한 끝에 그는 2004년 현업에 복귀했다.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 많아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2001년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고 이수현씨와 같은 의인이라 얘기해요. 이수현 씨는 의로운 일을 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고, 저는 제 일인 역무 안전 서비스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이란 칭호는 일찍이 사양했다. 다만 그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더 소중한 일을 하는 것이 보람된 삶이라고 여긴다. 2008년 3월 경인전철 역곡역 역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야에는 들어온 것은 주변지역의 생활환경.
역곡역이 위치한 주변은 아직도 어려운 이들이 많다. 지금은 코레일로 바뀌었지만,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0여 년 간 달려온 철도맨 김행균 역장은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만 봐도 생활이 각박한지, 기운이 없어 허위적이는지, 아니면 오늘은 좋은 일로 가는구나 등 직감이 올 정도라고 한다.
어려운 이들 누구나 퍼갈 수 있는 나눔쌀독 만들어
“나눔 쌀독을 역 구내에 만들었어요. 쌀이 필요해도 눈치가 보여서 퍼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역곡역 한귀퉁이에 항아리를 놓았어요”
어려운 것도 서러운데, 쌀을 퍼가면서 눈치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김 역장의 섬세한 배려다. 하지만 하루 20kg 쌀 한 포대면 되겠지 했던 쌀은 현재 7∼8포대를 소비할 정도, 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그만큼 늘었다.
우리 국민들 IMF도 견뎠다. 힘내보자
그가 부임한 후 역곡역에는 투신사고가 다행이도 아직 없다. 하지만 지난 IMF 금융위기 이후에 달려오는 열차에 투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시 이번 금융위기에도 그런 분들이 많아질까 걱정이 앞선다.
“아마 내년은 지금보다 더 힘들 것 같아요. 회사는 다니지만 알아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사는 것도 사이클 같아요. 어려운 고비를 버티고 패달을 굴려주면 언젠가는 평평한 길을 만나듯 좋은 시절을 맞지 않을까요?”
2009년 소띠해에 48세를 맞이하는 김행균 역장. 장애의 몸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서울사이버대학의 중국통상학과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한다. 희망이 있어야 생활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 근무로 인한 수면부족을 쫓아가며…
그의 두 다리는 아픔을 인식하면 더 아프다. 여기에 당시의 고통도 무게를 더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픔을 잊기 위해서라도 그는 생활에 더 활력을 찾고자 움직인다. 역내 순시 중에도 노점상들에게 '오늘 좀 팔렸냐'고 인사 한 번 더 건네며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
“올해부터 정부가 어려운 이들에게 긴급구호자금 혜택을 풀기로 한 것처럼,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세밀한 정책들이 자꾸 개발되어야 국민들의 발걸음이 그나마 덜 무거울 것 같습니다. 저희 역무원들도 새해에는 더욱 밝은 모습으로 대민 서비스에 임하고자 합니다”
┃정책기자단
김정미(jacall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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