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깊은 산 동굴 속에서 어찌 지낼까 생각에 엄마, 누나, 친지들은 오직 네가 우리 품에 환하게 웃으면서 돌아오길 기도한단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11일째인 29일 오후 피랍자 제창희(38·회사원) 씨의 어머니 이채복(69) 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피랍자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하나뿐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보고 싶은 창희야”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 유난히 가족의 귀여움을 받던 창희 씨에 대한 어머니의 애절한 심정이 배어났다.
이 씨는 “어려서부터 누나들 사이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살았니. 그 사랑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려고 그 힘든 곳으로 갔는데 이런 기가 막힌 상황에 처하게 되다니…”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이어 “엄마와 가족을 생각하고 어려움을 견뎌 주길 바란다. 지혜롭게 행동하고 침착하게 이겨서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며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 씨는 “사랑하는 창희야! 씩하고 웃는 얼굴이 무척이나 보고 싶구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길 우리 모두 기도하자”며 끝을 맺었다.
이날 피랍자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에 모인 피랍자 가족들은 오랜 기다림으로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을 피랍자들을 떠올리며 희망의 끈만은 놓지 않았다.
임현주 씨에 이어 두 번째로 육성이 공개된 유정화(39) 씨의 동생 정희(37) 씨는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무척 반가웠다”며 “언니가 살아 있어서 참 기쁘고 하루 빨리 공항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정희 씨는 “언니를 비롯해 다른 분들의 건강이 걱정”이라며 “‘22명 전원 석방’이라는 보도만 기다릴 뿐”이라고 덧붙였다.
차성민 대책위원장은 “(가족들이) 많이 지쳐 있지만 정부 협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피랍자들의 석방을 바라는 가족들의 편지를 매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故) 배형규 목사의 형 신규(45) 씨는 “시신을 장기 보관하기 어렵다는 정부 측 설명에 따라 항공편이 마련되는 대로 배 목사의 시신을 한국으로 운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규 씨는 “(운구가 이뤄져도) 피랍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모든 추모 행위를 연기하고 장례 절차도 피랍자들이 귀국하는 날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유족들은 전날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 마련됐던 배 목사의 빈소를 철수했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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