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마태복음 11:25-30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8)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I. 서론 지난 2월 24일자 한국 문화일보에 “쇠고랑 찬 수석(首席)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탄탄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평가를 받았던 소프트웨어 전문회사의 사장이었던 37세의 젊은 여인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그녀는 80년대 초반 학력고사에서 전국 여자 수석, 서울대 공대 수석 입학, 미국 명문대 공학박사, 대학 강사, 벤쳐 기업 대표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었으며, 모든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대기업에서 digital TV 핵심 기술을 훔쳐냈다는 혐의로 서울 지방 검찰청에 구속되면서 하루아침에 범죄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 대기업체의 전자기술원 책임연구원으로 있었는데, 지난해 8월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는 욕심으로 그 자리를 사임하고 자기 회사를 차렸습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 뜻대로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수석 인생을 살아온 그녀로서는 크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초조해진 그녀는 쉬운 지름길로 올라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자기가 몸담고 있던 연구소에서 싯가 50만불 이상에 해당되는 자료를 몰래 빼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하나의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누구든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쫓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쫓기면서 사는 사람은 불안합니다. 불안과 초조가 심해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을 해치게 되거나, 또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죄를 짓게 됩니다. II. 본론 이러한 인생들을 향하여 성경에서는 1.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원어적으로 보면, ‘수고한다’는 말은 고된 노동이나 괴로운 마음으로 인하여 심하게 지쳐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창세기 3장 16절과 18절에 보면,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후로, 여자와 남자는 육신의 고달픔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는 어려움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수고하는 자’에 해당됩니까? ‘무거운 짐을 진다’는 말은 무엇에 짓눌려 있어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실제로 속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로 짓눌려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형제와 자매 사이에 억압하고 억압당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분명히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마치 ‘멍에’와 같은 것입니다. 소가 사람보다 훨씬 힘에 세지만, 인간이 멍에를 지우면 꼼짝하지 못하고 순종하며 일을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도 누군가에 의해 또는 무엇엔가에 의해 멍에가 씌워지면 꼼짝 못하고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멍에 없는 인생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멍에가 없고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멍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2. 세상의 멍에와 예수의 멍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냥 세상에서 살면 세상이 주는 멍에를 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멍에가 다 없어집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 교회에 다녀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또 다른 멍에가 주어집니다. 주일이 되면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가야 합니다. 없는 살림에 헌금을 해야 합니다. 친교 당번을 하고, 청소와 설거지를 해야 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고, 이것 저것 봉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리고 또 주일이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옵니까? 가고 싶어도 못 가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세상일을 안해도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더 해야 하니, 어떻게 보면 세상이 주는 멍에보다 몇 배 더 무거운 멍에처럼 보입니다. 어떤 농부에게 두 마리 소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착하고 부지런한 반면, 다른 한 마리는 게으르고 꾀만 부렸습니다. 하루는 장터에 가서 소금 한 주머니와 솜 한 주머니를 샀습니다. 꾀를 부리는 소는 얼른 솜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자기 등에 실었습니다. 착한 소는 아무 말 없이 무거운 소금 주머니를 등에 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날이 무척 더웠습니다. 착한 소는 아무 말없이 길을 가는데, 꾀 많은 소는 날이 덥다고 불평하고, 등에 실은 짐이 불편하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자 꾀 많은 소를 괘씸하게 여긴 농부가 두 소에게 소리쳤습니다. “자 날씨가 너무 더우니, 등에 짐을 실은 채로 길 옆에 있는 냇가에 들어가서 걸어가라!” 꾀 많은 소는 신이 나서 냇가로 들어갔고, 착한 소도 주인이 시키는 일이라 순종하며 냇가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착한 소가 지고 가는 소금 주머니는 물에 녹아서 점점 가벼워졌지만, 꾀부리는 소가 지고 가는 솜 주머니는 물이 불어나서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얼마동안 시간이 지난 후에 주인이 다시 소리쳤습니다. “자 이제는 시원해졌을 터이니 길로 올라와서 걸어가라!” 세상이 주는 멍에와 예수님이 주는 멍에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이 주는 짐은 처음에는 가벼운 것 같고 좋은 것 같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고 어려워지며 마지막에는 영원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반면, 예수님이 주시는 짐은 처음에는 어렵고 나쁜 것 같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가벼워지고 점점 더 좋아지며, 마지막에는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헌금을 내는 것이 처음에는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그 일이 점점 쉬워지고, 심지어는 기쁨과 감사가 흘러 넘치기까지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결코 깨달을 수 없고 맛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3. 기쁜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쉬게 한다’는 말은 지쳐 있는 상태로부터 회복시켜준다는 말입니다. ‘쉬게 한다’는 말은 억압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풀려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예수님은 1)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불러서 우리로부터 무엇이든지 빼앗으려고 합니다.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우리에게로 오셔서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주시려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보다 높아져서 위에 군림하고 우리를 억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우리보다 낮아지시고 우리를 섬기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쉬게 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모든 짐을 자신이 2) 직접 담당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쉬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세상은 우리를 버리고 도망갑니다. 우리가 지치든지 말든지, 무거운 짐을 지든지 말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챙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고 모든 위험에서 미리 막아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심지어는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세계의 최강대국인 미국에는 핵 우산 정책(nuclear umbrella policy)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작고 약한 나라라 하더라도 미국과 손을 잡기만 하면 미국의 강력한 핵 방어체계가 그 나라를 보호해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손을 잡기만 하면, 아무리 강한 사탄의 권세라도 예수님이 미리 막아 주시고, 어떤 억압이라도 예수님이 직접 대응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호 우산 속에서 안전함을 누리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3) 그 날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쉬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날은 우리가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의 날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멸망의 날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세상 짐을 내려놓고 완전한 자유함을 얻으며 모든 수고로움에서 놓여나 하나님의 권세를 덧입게 되는 참으로 복되고도 귀한 날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심판 날의 주인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도 위로를 얻고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날이 있기에 예수의 멍에는 점점 가벼워지고 점점 쉬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날은 반드시 있습니다. 누구도 그 날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III. 결론 예수님은 우리가 지쳐있고 억압당하고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자기에게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쉼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심으로써 우리에게 쉼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날에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쉼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세상의 수고로움으로 인하여 지쳐 있는 분이 있습니까? 지금 예수님에게로 나오십시오, 세상의 어떤 것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그 분이 여러분을 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무엇엔가 또는 누구에겐가 억압되어 살아가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에게로 나오십시오. 그 분이 여러분을 건져주고 영원한 쉼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영접 기도> |
Saturday, March 10, 2012
천국 복음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6/2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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