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5:21~29
(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I. 서론
우주 안에는 변함이 없고 예외 없이 적용되는 “절대 자연
법칙”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만유인력의 법칙”,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
법칙은 어떤 물체의 상태가 변하더라도, 그것이 갖고 있는 절대 질량은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서 눈에 보이는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되어 공기 속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물이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물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상태가 변화된 것이고, 존재하는 장소가 달라진 것뿐입니다.
불완전한 이 물질 세계 속에서도 이러한 절대적인 법칙이
적용되는데, 하물며 완전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 속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II. 본론
1. 하나님의 형상과
부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에 있어서 절대 불변의 진리는,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인간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육체는 흙으로부터 왔습니다. 육신을 유지하는 모든 영양분을 흙으로부터
섭취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흙으로부터 온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질량불변의 법칙에
해당됩니다.
둘째로, 인간에게 있는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영은 영원하고 절대적이고 불변적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실존에 있어서 불변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셋째로, 인간에게는 혼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육체와 영이 결합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확실하게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죽은 후에 그
사람에게 있던 영이 새로운 육신과 결합을 하게 되면 새로운 존재로써 부활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로 승천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신 것은, 이러한 진리를 확실하게 증거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면, 그들은 모두 부활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증언하신 말씀에 의하면, 부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본문 29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심판의 부활”은 악을 행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영원한 멸망을 향한 부활이고, “생명의 부활”은 선을
행한 자들에게 해당하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부활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이 두 가지 중 하나에 반드시 해당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부활”이 온 인류에게 완전하게 실현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본문 21절부터 25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21>부활의 권세가 아들에게도 <22>심판의 권세를 다
아들에게(人子)
<23>아들로 말미암는 신앙의 판단(-->완전한 인간 이해-->자비,
은혜)
<24-25>예수로 말미암는 생명의 부활(예수의 오심, 부활의 의미)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 각자는
참으로 심각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3. “나는 어떤 부활인가?”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활하고, 생명의 부활 또는 심판의 부활 둘 중 하나에 해당되는데,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되기를 원하십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 그 판단 기준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의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선과 악의 문제가 있고, 그 선을 행하였는가 아니면
행치 않았는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선을 행하였으면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하였으면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인간이 그것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10장17절과 18절에 보면, 이 문제가 분명하게 해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선하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과 악의 절대적인 기준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상대적인 기준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하여 행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고 따라가지도 않으며, 머리로는 지식적으로 알고 있더라도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 결과가 무엇이며, 악을 행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요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III. 결론
미국 미시간 대학교 사회연구소의 스테파니 브라운이라는 심리학 박사가 최근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남을 돕는 사람이 훨씬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65세 이상 노부부 423쌍에 대해 5년 동안 조사한 결과, 남에게 선을
베푼 사람의 생존률이 이기적인 사람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난 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은 수명과 연관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졸업을 하게 되면 두 부류로 나뉩니다. 고생을 참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웃으면서 졸업하겠지만, 현재의 만족을 위해 게으름을 피오고 놀던 학생은 울면서 졸업하게 될 것입니다.
육신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모두가 똑같은 것 같이 보이지만, 오히려 선을 행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이겠지만,
일시적인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하게 되는 그 날에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부활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 가지 부활 중 어느 한 쪽에 반드시 해당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그 하나님의 뜻 즉 선을 행함으로써 생명의 부활의 주인공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날마다 달려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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