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1:12~19 7/31/2005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옛 속담들도 많이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었는데, 요즈음에는 ‘못 올라갈 나무는 사다리 놓고 올라가라’로 바뀌었답니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는 것이 옛 속담이었는데, 요즈음에는 ‘아는 길은 곧장 가라’가 새로운 속담이랍니다. 옛 어른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하였는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이다’라고 한답니다. 게으른 현대인들이 변명으로 하는 농담이 아닌가요?
게으른 사람들은 빗대어 하는 말 중에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누워 있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말로 바꾸면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누우면 이만 부러진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렇게 감나무 아래에 입 벌리고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은혜와 천국을 아무 값없이 선물로 받는다고 하니까, 본인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공짜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공짜 좋아하다 멍든다.’는 말이 있지요?
오늘 본문 12절에 보니,
1. ‘천국이 침노 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침노 당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여기서 ‘침노’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biazo’라는 말인데, ‘힘으로 강탈한다’ ‘억지로 빼앗는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정말로 원하는 자에게는 아무 자격이 없어도 천국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아주 사랑스러운 일곱 살 된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 아들이 ‘장난감 사주세요’라고 울면서 아버지에게 떼를 쓰는데, 그 장난감이 한 300불쯤 됩니다. 여러분이 그 아버지라면 어떤 마음이 되겠습니까?
또 똑같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아주 사랑스러운 일곱 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내가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아침마다 아버지 구두를 닦아드릴테니 장난감을 사주세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값을 알아보니 300불짜리입니다. 일 주일 동안 아무리 구두를 멋지게 닦는다 해도 300불 어치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만약에 그 아버지라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가복음 14장 16-24절에 보면, 예수님이 천국을 ‘큰 잔치를 베푼 어떤 주인’에 관한 비유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주인이 큰 잔치를 베풀기로 하고, 미리 귀한 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되자 아주 풍성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청함 받았던 자들에게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밭으로 나가야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소를 돌보러 나가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장가가는 일로 바쁘다고 핑계를 대면서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 그리고 저는 자들을 불러다가 잔치 자리를 가득 메우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면서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잔치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잇는 것은 ‘천국은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만 문이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2. 똑같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이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 요한복음 6장 68절에 보니, ‘너희도 나를 떠나려고 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하면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는 엄청난 권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경우는 어떠하였습니까? 요한복은 18장 38절에 보면, 자기 눈 앞에 서 있는,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을 향하여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 앞에 나가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라고 담대하게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진리를 선택하지 않고, 세상의 힘과 권세 앞에 무릎을 꿇는 비굴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는 결국 모든 권세를 박탈당하고 자살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천국은 마치 침노하는 것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찾지 않으면 결코 자기 것이 되지 않습니다.
3.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려면...
첫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피리를 불었다(17절)’는 말씀은 천국으로 초대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침노하는 자는 그 초대에 즉시 응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영원한 멸망을 지극히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애곡하였다(17절)’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대해 경고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계속 멸망의 길로 가버립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자는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행한 일로 판단하고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8-19절을 보면 세례 요한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최종적인 결단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기회 앞에서도 이 세대는 자기 생각과 세상 법칙대로 판단하고 비난만 합니다. 핑계를 대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침노하는 자는 되어지는 일들을 하나님 편에서 판단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는 끝까지 예수님을 비방하였지만 다른 하나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예수님께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눅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다 천국 갈 자격 없는 강도 같은 자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진실되게 원함으로, 그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손을 내밀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천국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모두 천국사다리를 열심히 올라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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