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3:1~8 2/19/2006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어느 유행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랑은 눈물의 씨앗’입니까? 톨스토이는 ‘사랑은 자기 희생이다’라고 정의를 내렸고, 유명한 철학자인 베이컨은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것으로 ‘사랑’의 의미가 잘 표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느 주일 날 장로님 한 분이 예배를 빠졌습니다. 알고 보니 낚시를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화가 나서, ‘다리나 똑 부러져라’라고 말하였는데, 금방 크게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 장로님의 친한 친구가 마침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저녁, 문제의 그 장로에게서 모사님을 만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매우 긴장하면서 그 장로님을 기다렸는데, 커다란 과일바구니를 들고 와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목사님, 제가 예배를 빠지면서 낚시를 갔는데도 목사님께서는 추운 날씨를 걱정해 주셨다는 말을 듣고 감사하여 감사의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지혜로운 사랑의 모습이지요?
어느 시골 마을에서 떡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떡을 만들던 며느리가 자기 남편 입에 떡을 넣어주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시아버지는 그 떡이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체면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시어머니가 들어와서 떡을 가져다가 자기 남편 입에 넣어 드렸더니 그 시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소리치더랍니다. ‘이놈아 너만 색시 있냐? 나도 나를 사랑해주는 색시 있다.’ 역시 사랑은 좋은 것입니다.
1. 본문 5절부터 7절은 agape 즉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구체적인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사랑’없음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삶 속에 열리는 열매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음’이라고 하는데, 헬라어 원어의 makro-thumeo는 ‘길다’ 또는 ‘멀다’는 의미와 ‘욕정, 격노, 분노’라는 의미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욕정, 격노, 분노’를 나타내지 않고 오래 담아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 담아두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온유하다’ 할 때, ‘온유함’이라는 헬라어 원어(krestewomai)는 ‘상대방에게 요긴한, 유익한, 친절한, 도움이 되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면, 그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투기하지 않음(zeloo)’은 ‘열심, 열정, 시기, 질투’라는 의미인데, 자신의 열심히 인하여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자랑하지 않음(perperewomai)’은 ‘허영심이 강하다’는 말에서 파생되었는데, 허영심으로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교만하지 않음(phisiow)’은 ‘풀무’ 또는 ‘부풀리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는데, 자신을 부풀림으로 교만한 자에게는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무례히 행치 않음(askemoneo)’은 ‘모양 없는, 보기 흉한, 꼴사나운’이라는 뜻인데, 흉하게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치 않음(zeteo)’은 ‘자기 자신의 것을 추구하고 찾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다는 뜻입니다.
‘성 내지 않음(xaroxewno)’은 ‘날카롭게 하다. 자극하다. 성나게 하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남이나 자신을 자극하여 성나게 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악한 것을 생각지 않음(logizomai-kakos)’은 고의적으로 악한 것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음을 의미입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기뻐함’은 불의한 것 위에 있기를 기뻐하고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을 싫어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참음(stego)’은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덮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는데, 참지 못하여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는 사랑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pistewo)’은 ‘믿고 맡긴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람(elpizo)’은 ‘기쁘고 좋은 마음으로 앞날을 예상한다’는 말에서 파생되어 ‘기대하다. 희망하다. 바라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소망이 없는 자에게도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견딤(휘포메노)’은 ‘뒤에 남다. 기다리다.’라는 말에서 파상되어 ‘견디다. 지탱하다.’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도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14가지의 현상들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and’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의미가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러한 사랑을 과연 우리가 실제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열매들의 원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 원인은 바로 ‘사랑 없음’입니다.
2.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사랑의 열매들이 우리에게서 나타날 수 있을까요?
여러분 각자의 심령 속에 사랑이 있게 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3.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사랑이 여러분 심령 속에 있게 될까요?
악한 본성의 인간이지만, 사랑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이 되면, 그 사랑이 그의 심령 속에 존재하게 됩니다.
나의 시골 집에 먹을 수 없는 ‘개복숭아 나무’가 있었는데, 아버님이 어느 날 ‘좋은 복숭아 나무 가지’를 구해다가 접목하였더니, 신기하게도 그 가지에서는 아주 맛이 좋은 복숭아가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로마서 11:16-17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러면, 실제적으로 어떻게 해야 사랑이신 하나님께 접붙임이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면 그렇게 됩니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이시므로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그 분이 ‘사람들과 같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사랑을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실현되게 되었고, 낮춤과 복종 그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고,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반면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고,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열심을 다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읍시다. 자신을 낮추고 복종하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읍시다. 그리하여 ‘사랑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사랑 있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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