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14, 2012

"오늘날 응하였느니라" [2004-8-29]



본문 : 누가복음 1:16~30 8/29/2004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어느 나라에서 다른 나라에 외교관을 파견하게 될 때, 아무 연락 없이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어떤 사람을 외교관으로 임명하였는지 그리고 그 사람의 개인 신상 내용이 어떤지를 서면으로 먼저 정식 통보한 후에야 외교관을 그 나라에 보냅니다. 상대방 나라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외교관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실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들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아들을 보내신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어떻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신지를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시고 인간들에게 선포하게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사야 선지자였습니다. 구약 성경 중에서 특히 이사야서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가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어느 안식일 날 자기 규례대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셨고 성경을 읽으셨는데, 이사야서 61장 1절부터 2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느 나라에 파견된 외교관이 그 나라 대표자에게 미리 통보하였던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으면서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1. 이 소개서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목적이 명괘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인간들에게 보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최종적으로 이루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기쁜 소식의 내용을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 받기 이전의 모든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중 권세 잡은 자(사탄, 마귀)에게 포로로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자는 사탄과 함께 영원히 멸망될 것입니다. 그 포로 상태로부터 아무 값없이 풀어주시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둘째로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시겠다고 합니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떠난 자는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영원하고 완전하신 아버지를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니 눈이 멀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게 하시겠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셋째로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인간은 악한 영에게, 가진 자에게, 잘못된 믿음에, 그리고 사회적 관습과 선입견에 눌려서 지냅니다.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눌린 상태로부터 풀려나게 하신다 하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넷째로는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멀어졌던 인간이 하나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의 때를 주기겠다고 하니 정말로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II.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응하였다는 말은 이루어졌다(fulfilled)는 뜻인데, 항아리를 가득 태우듯이 채워졌다는 의미이며, 모든 것이 계획대로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사야에게 들려주었던 그 말씀이 500년 만에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귀에 응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 복음을 들을 수 있고 또한 듣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생각 속에까지 이루어지는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듣고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 깊이까지 즉 삶 속에까지 이루어지는 말씀이 되는 경우는 더욱 적습니다. 행함으로 옮겨지지 않는 믿음은 헛된 믿음이고,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III.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두 거자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나는 배척하는 자들의 반응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마을에 살았던 나사렛 사람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그의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회당에 속한 사람들은 마음이 교만하여 즉 마음이 부자이기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음으로 받는 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이나 경험을 접어두고 마음을 여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1차대전이 있을 때, 터어키 군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팔레스타인 전역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영국 여왕이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던 알렘비 장군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알렘비는 모든 공격 준비를 마친 후에 여왕에게 연락하였습니다. ‘병사들이 많은 피를 흘려서라고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여왕은 ‘나는 피 흘리는 것을 원치 않으니, 먼저 기도하라.’는 회답을 보내왔습니다.
알렘비는 공격을 늦추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알렘비’라는 그의 이름은 터어키어로 ‘하나님이 대항하신다’ 또는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터어키군에게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알렘비가 왔다’는 말이었습니디. 그리고 그 알렘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터어키군에게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들은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습니다. 피흘림이 없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 흘림이 없는 승리를 원하십니다. 복음을 듣고 빨리 스스로 순종하여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계시록 3장 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 복음은 이미 2000년 전에 다 응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육신의 귀로 그 복음을,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귀를 열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원한 자유자, 하나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영접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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