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6:21~28 1/15/2006 (21)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나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사람과 완전히 하나 되는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나의 부족함을 그의 능력으로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능력이 곧 내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사장과 ‘하나’가 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은 사장의 권세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과 완전히 ‘하나’ 되는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그는 대통령의 권세에 못지않은 권세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애쓰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하나’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의 권세가 내 권세가 될 것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내 권세’라는 찬양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주님과 하나 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본문 24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려거든’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의 뜻은 ‘come after me’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를 닮으려면’ 또는 ‘나와 하나 되려면’이라는 의미입니다. 1. 첫째로, 자기를 부인해야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존심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난 영웅이 되어보고자 하거나,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살아가거나, 자기감정만을 내세우면서 말하고 행동하거나, 자기 뜻과 계획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파킹을 하기 위하여 차를 후진시키다가, 내 차의 타이어가 완전히 찢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나중에 보니,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콘크리트 속에 쇠 조각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밖으로 삐져나와 내 타이어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습니다. 우리 말에 ‘개밥의 도토리’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로 어우러지지 않는 개인의 위험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잘 되고,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도 그 혜택을 입으려고 하면, 그 안에 소속된 구성원들 각자가 자기를 부인하고 전체 속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혼자서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남들이 아무리 협동하려 해도 잘 되지 않고 결국에는 전체에 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2.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나’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공동체 안에,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고 공짜로 얻어 보려 하거나 자신이 받을 고통이나 노동이 싫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는 사람이 있게 되면 그 공동체는 결코 ‘하나’ 됨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법칙은 ‘콩 심어야 콩이 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를 심으면 100배 60배 30배로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심으로써예외 없이 이 법칙을 지키셨습니다. 한 생명을 희생으로 심음으로써 엄청난 구원의 열매가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 열리게 하셨습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최재천교수와 김길원박사 연구팀이 유럽산 거미인 ‘아모로비우스 페록스(Amaurobius ferox)’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그 거미는 생애 중 일부만 무리를 지어 살며 집단사냥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거미 무리 속에는 항상 얌체족이 있어서 일은 하지 않고 남들이 잡아 놓은 먹이를 빼앗아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집단 규모가 커질수록 ‘무임승차’ 거미도 늘어나고, 한 마리당 먹이량이 감소하여 결국에는 ‘혼자 사는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하나 둘씩 떠남으로써 집단사냥 사회가 붕괴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은 노력도 하지 않고 수고도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얻으려고 하는 얌체족이 있게 되면 결코 능력 있는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 각가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만큼 전체 능력이 증가될 것입니다. 3. 셋째로, 주님과 같은 길을 가야 ‘하나’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에서 ‘좇는다’는 말의 헬라어 원어적 의미는 ‘같은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같이 갈 때 비로소 주님과 ‘하나’ 되는 관계가 되고 그 주님의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가신 길은 어떤 길이었습니까?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대신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시고 결국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시는 영원한 최고의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자신의 실제 삶으로는 동참하지 않는다면 골고다 언덕 길을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던 구경꾼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 구경꾼들이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누릴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어느 나라의 왕에게 많은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왕은 그들의 헌신과 충성심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큰 잔치를 베풀고, 신하들에게 ‘너희 집에서 최고로 좋은 포도주 한 잔씩 가져와서 입구에 있는 술 항아리에 부으라’고 하였습니다. 신하들이 다 모인 후에 왕이 그 항아리에 있는 포도주의 맛을 보았더니, 색깔만 포도주 색이었고, 실제는 맹물이었답니다. 알고 보니 신하들 각자는 자신의 포도주가 아까워서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 하면서 색을 탄 맹물을 가져다 부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 하면서 전혀 다른 길로 간다면, 그 공동체는 결코 ‘하나’ 되는 능력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는 길을 같이 따라가 주고, 사장이 가는 길에 동행하고, 목사가 가려는 길에 동참해 줄 때, 그 공동체는 비로소 ‘하나’가 될 것이요, 큰 능력을 발휘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25절에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순교자의 정신’을 가져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이야말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스데반을 위해 보좌에서 일어서기까지 하셨습니다.<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27절에서 주님은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하나 되는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를 통해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섬길 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길을 함께 감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충만하게 받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Friday, March 16, 2012
“주님과 하나 되는 길” (1/1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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