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가 내 꿈을 막지 못해요"
<이 기사는 톱클래스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제 열두 살, 자그마한 소년이 힘차게 테니스 라켓을 휘두른다. ‘펑’ ‘펑’ 라켓의 타격 음이 묵직하게 들려온다. 실내 테니스장이긴 하지만 영하 3도의 날씨는 소년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게 했다. 이덕희(12・제천 신백초등학교 5학년).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는 11~12월 미국에서 열린 에디허, 프린스컵, 오렌지볼세계대회에서 미국 주니어 랭킹 1위와 아르헨티나 주니어 랭킹 1위 선수를 물리치며 3위를 두 번, 5위를 한 번 차지해 세계 테니스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 테니스를 짊어지고 나갈 샛별로 주목받고 있는 이덕희 군. 그를 국가대표 테니스선수 훈련장인 제주도 서귀포 테니스장에서 만났다. 덕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우다. “안녕”이라고 가볍게 인사를 건넸지만, 덕희는 알아듣지 못했다. 수첩을 꺼내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니?”라고 써서 보여준 후에야 빙그레 웃는다. 덕희와의 대화는 덕희와 가장 정확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덕희 어머니 박미자(35) 씨의 통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상 받았을 때 기분 어땠니?
“안 좋았어요.”
왜 안 좋았니?
“1등이 아니고, 3등이잖아요. 그리고 미국에서 받은 트로피보다 예전에 한국에서 받은 트로피가 훨씬 예뻐요.”
테니스 재미있니?
“네.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친구들도 많고요. 로저 페더러처럼 될 거예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 뭐니?
“테니스하고 엄마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열두 살 소년과의 대화는 이렇게 짧은 질문과 답으로 이어졌다. 현재 ‘쾅쾅, 쿵쿵’ 등 짧고, 강렬한 충격음만 희미하게 들을 수 있다는 덕희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생후 6~7개월 때 덕희가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덕희 어머니.
“첫돌이 되기 전에는 덕희가 너무 어려 말을 못하는 줄로만 알았어요. 병원을 찾아도 덕희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봐야 판단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덕희가 세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지요.”
세 살이 되자 의사는 덕희에게 청각장애 판정을 내렸다.
“충격이었죠. ‘큰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왜 나한테…’란 생각이 들더군요.”
덕희의 청각장애 판정 후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충격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덕희의 부모. 아들을 그냥 둘 수 없었던 덕희 아버지 이상진 씨가 먼저 털고 일어섰다.
덕희의 미래를 생각하다 덕희가 정상적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길을 고민했다. 고민의 답은 테니스였다.
친척 형들 따라다니다 테니스 시작해

“덕희가 테니스를 하던 친척 형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재미있게 노는 거예요. 테니스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친척 형들하고 테니스를 치고 있더군요. 조카들에게 물었더니 자기들이 질 때도 있다는 거예요.”
일곱 살 덕희는 그렇게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았고, 테니스부가 있는 제천의 신백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떠나 일반 초등학교로 가는 게 모험이었다”며 덕희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자칫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늘 조마조마했죠. 그런 일도 있었고요. 지금은 단독 주택에 살지만 몇 년 전까지 아파트에 살았어요. 덕희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 때면 함께 놀던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덕희를 쳐다보고, 수근거렸죠. 어린 마음에도 그걸 알았는지 많이 울고 들어왔어요. 덕희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잖아요. 학교에서도 그러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어요.”
다행히 덕희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또래 여자 친구들에게도 최고 인기남 중 하나란다.
“테니스가 덕희와 사람들을 이어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 덕희가 테니스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면 선생님이나 반 아이들이 다 자기가 상을 탄 것처럼 좋아해주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내 친구가 상을 타거나, 이기고 오면 괜히 나도 어깨에 힘 들어가는 거. 덕희를 통해서 친구들이 그런 기분을 느끼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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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홍 코치(오른쪽)와 함께. |
덕희 역시 테니스가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고 있음을 아는 듯했다. 덕희와의 대화 중 특이한 것이 있었다. 청각장애우인 덕희는 수화를 한 번도 쓰지않았다. 덕희 어머니는 “덕희는 수화를 거의 하지 못한다”고 했다.
“덕희를 장애아가 아닌 정상아들과 똑같이 키우고 싶었어요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수화를 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말하려는 노력도, 상대의 말을 들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덕희가 정상 아이들 속에서 자라고, 정상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조금이라도 소리로 의사표현을 하고, 남의 말을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그래서 특수학교인 충주성심학교를 다녔지만 아주 간단한 수화를 빼곤 수화를 못 배우게 한 거예요.”
첫 출전한 세계 대회, 그것도 모든 환경이 낯선 외국 대회에서 연이어 입상한 덕희의 테니스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훈련장에서의 덕희 모습은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스트로크와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다.
주니어 국가대표 테니스팀 김영홍 코치는 “코치를 흥분시킬 만큼 누구보다 빠르고, 힘있는 테니스를 한다”며 덕희에 대해 말했다.
“스트로크나 풋워크는 마치 춤추는 것 같아요. 이제 열두 살인데 열여섯 살 중・고등학생 선수 같은 플레이를 하지요. 훈련 중 덕희가 못 따라오는 것 같아 혼을 내다가도 ‘아차’ 해요. 이제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인데, 중・고등학생 선수 대하듯 하니까요. 실력 면에서 주니어 부문 세계 10위권 선수임은 분명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형택 선수의 열두 살 시절보다 절대 못하지 않습니다.
” 또 다른 코치는 “발도 빠르지만 상대의 포즈를 읽고 다음 플레이를 이어가는 예측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며 “기술적으로 백 핸드에서 이루어지는 스트로크나 발리가 초등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고요”라고 말한다.

옆에서 코치를 바라보고 있던 덕희가 코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나더니 포핸드 스트로크 포즈를 취한다. 그리곤 “나 백핸드보다 포핸드가 더 쉬운데”라고 말해 함께 있던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덕희 어머니는 덕희를 강하게 키우고 싶다고 했다.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다. 누군가 먼저 손길을 내밀기 기다리기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라기 때문이란다.
덕희가 말했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다 마음먹기 나름이에요. 저와 비슷한 다른 친구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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