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6:21-28
(21)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I. 서론
중세 시대에 있었던 십자군 운동에
대해, 우리는 대개 예루살렘 성지를 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한 거룩한 전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또 다른
모습이 발견됩니다.
그 때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Alexius I세는 동로마의 수도 Istanbul이 회교도들에 의해 군사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로마 교황 Urbanus II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로마 천주교회와 그리스 정교회로 분열되어 힘을 잃어버렸던 교황은
이것을 다시 하나로 통일시켜서 그 힘으로 로마제국의 황제권까지 제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바로
성지 이스라엘을 회교도들로부터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교황은 십자군 동원령을 내렸고, 빠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군인으로 동원하기
위해 다섯 가지 약속을 미끼로 사용하였습니다.
(1)종군자의 가족과 재산은 교황이 보호해 준다.
(2)종군자의 모든 죄는
사함받을 수 있다.
(3)형무소에 복역중인 죄수가 종군하면 모든 죄를 사해준다.
(4)빚을 진 자는 탕감되고, 전사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5)동방에는 성자의 유품들, 금은보화, 미녀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되자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수많은 죄수들, 불순한 목적을 가진 불량배들, 빚을 진 사기꾼들이 십자군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신앙과 열정으로 십자군이 된
성도들도 있었지만, 십자군이 가는 곳마다 약탈과 살인이 계속되었으며, ‘거룩한 전쟁’은 ‘추악한 전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들은 1096년부터 1272년까지 거의 200년 동안 무려 9차례에 걸쳐 십자군 운동을 계속 일으켰습니다.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는 일이 아무리 거룩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한 인간의 욕심과 고집이 더 앞서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민족들이 서로 원수가 되게 하였고, 8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후손들 사이에 분쟁과 투쟁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인간의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이용하는 악한 세력이 숨어
있습니다.
II. 본론
오늘 본문에 보면, 1. 예수님의 뜻과 베드로의 뜻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베드로는 갈릴리에 남아서 민중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는 것을 더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시지만,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한 후 제3일에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알려주었지만, 베드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뜻과 베드로의 뜻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22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원어적인 의미를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다른 곳으로 끌고 가서 심하게 꾸짖었다”는 의미입니다. 부모와 자식과 아내를 버리고, 직장과 사업을 버리고 예수를 좇아갈 때,
베드로는 자기 나름대로 바라던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습니다.
2. 사탄의 전략-자기 숭배
바로 이러한 베드로의 마음을 사탄이 잘 알고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만이 옳고 선하다고 주장합니다. 사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숭배하도록 만듭니다. 그렇게 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자기 생각 아래에 굴복시키려고 합니다. 그러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외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주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을 더 앞세울 때, 베드로는 이미 “자기 숭배”라는 사탄의 계략에 넘어갔고, 사탄과 한 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실수와 주님의 책망을 통하여,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3. 승리하는 비결을 배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23절에 있는 것처럼, 베드로의
실수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한 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에
최고의 우선 순위를 두기 위한 구체적인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1)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뜻과 주장 또는 계획을 주님 앞에 굴복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의 것과 내 것이 충돌될 때, 지금 당장에는 내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나의 것을 버리는 결단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무조건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것이니, 나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저 기도만 하면서 되는대로 살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것 역시 심각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 예수님은 분명한 자기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심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였다면, 사탄의 계략에 결코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의 뜻과 계획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뿐만 아니라, 최고의 우선순위를 항상 주님께 드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비결은, 2)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성도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수고와 의무를 뜻합니다. 우리는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노력하지 않고 쉽게 일확천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기꾼의 밥입니다. 허황된 꿈을 꾸면서 쫓아 다니는
동안, 사기꾼들은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도망갑니다.
또한 믿는 자들 중에는 희생과 헌신 없이 큰 복을 받아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쉽게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단 사설을 전파하는 자들의 밥입니다. 기적적으로
병이 낫고 쉽게 돈을 벌고 모든 것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가서는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영혼까지도 황폐해지는 피해를
당합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주님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 사단이 그를 이용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잠시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성도로서의 의무를 감사함으로 준행한다면 어떻게 사탄이 여러분을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셋째 비결은, 3) “예수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나 가르침을 따라간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원문에서 “좇아간다”는 말은 계속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을 늘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붙잡히시던 밤에, 베드로는 멀리 떨어져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되겠습니까?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멀리 떨어져서 편안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주님을 따라가려고 하면, 오히려 사탄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공격할
것입니다.
좇아간다는 것은 뒤에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좇아가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주님을
꾸짖으면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엄청난 책망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주님의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좇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멀리 떨어지지 말고 바짝 붙어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끔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사단이 공격하지 못합니다.
III. 결론
성도
여러분,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이미 영적 전쟁 속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교활한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략은, 우리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숭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뜻을 고집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주님의 말씀 앞에 굴복시키면, 자기 십자가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지면,
그리고 항상 주님과 동행하기로 결단하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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