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5:7, 출애굽기 33:14-19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4)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15)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I. 서론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ain)’이라고 말하는 마태복음 5장의 “복 있는
자”가 되는 비결을 말씀으로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긍휼’이라는 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가엾게 여겨 돌보아 주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 또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면, “어떤 불쌍한 사람을 가엾게 여겨 돌보아 주는 자는 복이 있다”는 뜻이 되는데, 과연 예수님의 말씀이 그러한
의미입니까?
II. 본론
1. ‘긍휼’의 의미를 나타내는 헬라어 원어는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단어들 중 하나인데,
단순히 어떤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눈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그의 피부 밑에 들어가서 그의 느낌을 똑같이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 단어 중에서 ‘sympathy’라는 말이 이 개념에 가까운데, 이것은 “함께”라는 말과 “경험하다”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긍휼히 여기는 자’의 의미는, “내가 상대방과 함께 동행하고 그가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끼는
사람”을 의미하며, 그렇게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거꾸로 “그 사람이 나와 동행해주고 나와 똑같이 느껴주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에 이러한 의미에서 여러분을 긍휼히 여겨주는 누군가가 여러분 주변에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내가
슬플 때 나의 슬픔에 똑같은 슬픔으로 동참하고,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를 완전하게 이해해 주고, 내가 고난 당할 때 나의 고난을 위로해
주고, 내가 기쁘거나 자랑하고 싶을 때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주는 참된 친구가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욥기 1장과 2장에 보면,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던 욥에게 갑자기 재앙이 임하여, 그가 모든 재산과 자식들을 잃게 되었을 때, 아무도 그를 이해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하면서 그의 곁을 떠났고, 그의 세 친구들은 찾아와서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너에게 재앙이 임하였으니, 죄를
회개하라”고 꾸짖기만 하였습니다. 만약에 욥의 아내가 욥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그와 동행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에 세 친구들이 욥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누군가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고싶지요? 여러분을 완전히 이해해
주고 여러분과 동행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먼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입에서 불평이 끊어지지 않고 원망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하나님의 법칙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려고 하기보다 내가 먼저 긍휼히 여김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여러분이
정말로 긍휼히 여김을 받고싶다면, 2. 누구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먼저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법칙이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형편과 사정을 남편이나 아내가 완전하게 이해해 주지 않아서 화가 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
자신이 배우자의 사정과 형편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마치 그의 피부 밑이 들어가 그의 느낌을 똑같이 느끼는 정도로 그와 함께 있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상대방이 당신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면, 당신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부모님들이나 자녀들이 이해해 주지 않아서 속상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부모님과 자녀들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당신의 고난에 대해 하나님이 모르는 척 하시는 것 같아 속상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먼저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당신을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3.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됩니까? 본문 17절에 의하면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입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름으로 알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완전하게 이해하셨기 때문에 그를 긍휼히 여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첫째로, (1) 그의 과거를 이해해야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목회 상담자로 유명하신 정태기 박사님이 있습니다. 그 분의 고백에 의하면, 헤어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결혼한 후 10년 동안 하루도 변함 없이 열정적으로 부부싸움을 하였다고 합니다.
정 박사님은 어렸을 때, 겨울이 되면
어머니가 지극한 정성으로 보신용 음식을 만들어서 오직 아버지에게만 드리는 것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나도 이다음에 장가가면 내 색시가
그렇게 하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후에 그의 아내는 한 번도 그런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남편에게 늘
불평을 늘어놓았답니다. 그래서 정 박사님은 결혼이란 불행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반대로, 정 박사님의 아내는, 몸이
건강치 못한 자기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가 늘 보약을 달이고 집안 일을 자상하게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나도 이 다음에
시집가면 내 남편이 나를 상전 모시듯이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결혼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니, 남편이 이것 저것
시키면서 종 부리듯 하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남편에게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정 반대의 생각을 하며 30년 가까이 자란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하여 한 지붕 밑에서 살게 되었으니, 그렇게 싸우는 것이 당연하였겠지요. 그 불행은, 서로 상대방의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첫 걸음은, 그의 과거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내 또는 남편이 자라온 과거 환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부모님의 과거 생애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의
지나온 날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습니까?
둘째로, (2) 그의 현재를 이해해야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조기교육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6살도 되기 전에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으로 언어연수를 보내는 극성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을 너무 일찍 너무 많이 가르치면 스트레스를 받아 심각한 정신병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현재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제공해 주어야 그에게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를 무시한 과거 이해와 미래 소망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셋째로, (3) 그의 미래를 이해해야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면, 그를 이해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때 그 앞에서 세 번이나 그를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그러나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오셔서 세 번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 그를
용서하셨고, 그의 신앙을 회복시켜 주었으며,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19절 말씀에 의하면, 그가 이다음에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떻게 쓰임 받게 될 것인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 한국 남성들에게 큰 기쁜 소식이 있었습니다. 세계 스포츠 역사상
한국 여성들만이 이름을 날렸는데, 최경주라는 무명의 한인 프로골퍼가 PGA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는 완도 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승을 하고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의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남편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고생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에게 긍휼함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19절)
III. 결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배우자를 긍휼히 여기십시오. 마치 피부 밑에 들어가 그의 느낌을
똑같이 느껴보는 것처럼, 여러분이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자 노력을 하십시오. 여러분의 배우자가 여러분을 이해해 주고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와 자녀를 먼저 긍휼히 여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가정에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긍휼히 여기십시오. 과거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십시오. 현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살피십시오.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계획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참된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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